▲ 숭례문 복구·복원사업은 일제가 헐었던 성곽까지 복원될 예정이다.


화재부터 복구까지
“선산 금강송 내주겠다” 도움의 손길 이어져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오는 10일은 화마에 숭례문의 본래 모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 2008년 토지보상 문제로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이 시너와 라이터로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당시 국민들은 불길이 활활 타고 있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숭례문은 2012년에 완성되는 것을 목표로 가설덧집 안에서 복구·복원사업에 한창이다.

숭례문의 좌우 성곽은 동쪽 남산 자락으로 53m, 서쪽 대한상공회의소 방향으로 16m로 총 69m가 복원된다. 복원될 숭례문의 지반은 이전보다 30~50㎝ 낮아지는데 이는 일제 때 성토된 부분을 걷어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발굴 조사 중 현재 지표보다 1.6m 아래에서 확인된 조선전기 유구층은 유리를 덮어 공개될 예정이다.

대목장이며 석장, 번와장 등 최고의 장인들이 숭례문 복구 사업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장인뿐 아니라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보 제1호인만큼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선산(先山)에 있는 금강송을 숭례문 복구에 사용해도 괜찮다는 등 이곳저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당시 피해는 문루 2층의 90%, 1층의 10% 정도 소실에 그쳤다. 홍예문(무지개 모양 통로)과 석축이 온전하고 문루 1층도 90% 이상 남아있어 국보 1호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데 문화재위원회는 찬성했다.

문루 1층과 2층이 입은 피해의 차이는 크다. 2층의 경우 거의 불에 탔으나, 1층은 2층의 부재들이 떨어지면서 주로 부러지거나 꺾이는 등의 피해를 입었고, 거의 소실되지 않았다. 다행히 현판은 화재 진압 중, 소방대원이 수습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만, 급히 수송하는 과정에서 현판을 떨어뜨려 현판의 겉모양 등 일부 부재가 손상을 입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숭례문 본래의 가치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복구 작업은 기존 부재를 최대한 재활용하고 일제가 훼손한 부분도 바로잡는다는 원칙 아래에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태조 7년(1398) 창건 당시 기록, 세종 29년(1447), 성종 10년(1479) 개축 자료 및 구한말 옛 사진 등이 중요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숭례문, 즉 성벽이 이어진 모습을 살린다는 것이 문화재청 측의 계획이다.

복구기간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으로 수습, 조사 및 설계, 복구공사로 총 3단계로 나뉜다. 수습은 2008년 5월에 완료, 조사 및 설계는 2009년까지 이뤄졌다. 약 1년 7개월 동안 이뤄진 조사 및 설계단계에서는 현판 복구, 발굴조사, 복구 설계, 고증자료 조사가 추진됐다. 복구공사는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3년간 문루해체 및 복구, 육축보수 및 좌우성벽 복원, 문루 단청, 주변 환경정비를 거치게 된다.

수습된 현판은 양녕대군 사당인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 현판 탁본자료를 기초로 진위를 확인한 결과 6.25전쟁 이후 잘못 수리된 부분을 확인해 바로잡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오옥진 선생과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홍창원 선생이 참여해 2009년 5월 26일 현판 복구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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