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유엔은 올해도 어김없이 심각한 북한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지난 14일 채택했다. 2005년부터 15년 연속 채택으로, 미국·일본·호주를 비롯해 40여개 회원국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던 우리나라는 올해는 돌연 참여하지 않았다. 같은 민족이라면서도 북한주민의 인권침해를 우리 스스로 외면한 것이다.

결의안은 “오랜 기간 그리고 현재도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침해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제수용소 운영, 강간, 공개 처형, 비사법적·자의적 구금과 처형, 연좌제, 사상과 종교의 자유 등 북한정권의 현재진행형인 인권침해 행위도 구체적으로 나열했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 반인도 범죄와 관련 ‘가장 책임 있는 자’, 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적절한 조처도 권고했다. 

우리 정부는 이처럼 결의안에 참여하기는커녕, 최근 북한 주민 두 명의 귀순 의사를 무시하고 살인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군사 작전하듯 북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NLL상에서 사투를 벌이며 탈북을 시도하다 극적으로 성공했는데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니 그 말을 누가 믿어줄까. 대한민국에 자유를 찾아온 북한 주민을 적법절차도 거치지 않고 검은 안대를 착용케 하고 포박한 채 판문점까지 호송해 북송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사법주권을 포기하고 헌법상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정부 당국자는 국민 보호 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에 대한 무시와 외면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에서조차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정부는 한국 국민을 해외나 북한으로 추방할 권한이 없다. 이번에 귀순 요청을 한 탈북 선원 2명도 마찬가지다. 추방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만 가능한 조치다. 이번 추방 결정을 함에 있어 출입국관리법상의 강제퇴거 규정을 준용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귀순 탈북 선원’은 엄연히 우리 국민임에도 이들을 외국인에 준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 자체가 반(反)헌법적이다.

또 준용은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다른 한편 북한이탈주민법 제9조는 이 법에 따른 보호대상 배제 사유를 정한 것이지 추방 근거를 명시한 게 아니다. 요컨대, 현행법상 귀순 의사를 표시한 탈북민을 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부도 그러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이번의 강제북송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자의적·불법적인 처사라고 하겠다. ‘귀순 탈북민 북송 금지’ 원칙은 향후 남북한 간에 범죄인인도협정이 ‘입법사항에 관한 합의서’의 형태로 체결되는 경우 그 범위와 한도 내에서만 일부 수정될 수 있을 뿐이다.

정부는 탈북 선원이 밝힌 귀순 의사표시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이를 기초로 북송했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성 여부는 밀실에서 몇몇 고위관리들이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임의로 판단·결정하는 게 아니다. ‘생명’이란 회복 불가능한 인권 침해와 연결돼 있고, 북한 정권의 ‘권력적·보복적 살인’에 대한 방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판단은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와 같은 공식기구의 절차를 거치거나 사법적 결정에 따르는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물론 당사자들에겐 이의신청과 행정소송 제기 등 불복절차를 허용해야 했다. 그런 조치는 아예 생각지도 않은 채 사실상 비밀리에 또한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서 탈북민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결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렸다는 것 자체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향후 국제사회의 여러 조사결과가 발표된다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단지 눈앞의 남북관계 개선이란 근시안적 핑계로 자국민을 사형장으로 내몬 우리 정부의 역사적 평가는 준엄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