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마라톤 레이스의 계절이 끝났다. 11월 초 전통적인 뉴욕마라톤을 마지막으로 올 시즌 주요 국제 마라톤 대회가 모든 일정을 마쳤다. 미국 뉴욕 허드슨 강과 맨해튼 일대 5개 지구를 도는 뉴욕마라톤에서 예년처럼 수만명의 일반인들이 엘리트 선수들과 함께 달렸다. 멋진 사진물이 된 대형 현수교인 베라자노 브리지를 비롯해 여러 다리를 통과하며 환상적인 경치를 선사하는 뉴욕 마라톤은 세계 마라토너들이 가장 참가하고 싶은 꿈의 무대이다. 매년 여러 명의 한국 일반 마라토너들이 자비를 들여 참가하는데, 올해 대회에는 정치인 안철수씨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아내도 국내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할 정도로 마라톤 열성 부부인 안철수씨는 뉴욕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미래에 정치 인생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겠다는 결의를 다져보지 않았을까 싶다.

‘마라토너 소설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 제목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수년 전 읽은 적이 있었다. 하루키의 책 제목을 빌려 마라톤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그의 책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책 제목도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이 책 맨 끝에서 만약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쓸 수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마라톤이 그를 세계적 작가로 키웠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는 지난 수십년간 소설을 쓰기위한 체력을 키울 목적으로 마라톤을 줄기차게 해왔다. 그에게 마라톤 완주는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이 모두 갖췄다는 것을 의미했다. 달리기를 통해 다져진 육체와 정신을 소설쓰기에 활용해 국적과 연령을 초월해 세계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어릴 적 달리기에서 재주를 보였고, 군대에서 특전사 장교를 지원할정도로 체력과 정신력에 자신감이 있던 필자는 그동안 마라톤 경험을 갖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등산이나 빠른 걷기 등을 시간이 나면 게을리하지 않지만 마라톤을 직접 할 기회는 없었다. 친구나 SNS 벗들이 들려주는 마라톤의 묘미를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마라톤의 장점에 대해서는 다른 스포츠보다 아주 긍정적으로 본다. 야구, 골프, 사이클 등과 같이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스포츠라는 사실 때문이다. 인종, 학력, 빈부, 이념과 종교 갈등 등 각종 복잡한 글로벌 문제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나 있는 운동이다.

지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백인들의 무대였던 세계마라톤은 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맨발의 마라토너 에티오피아의 아베베가 2연패를 차지하며 검은 대륙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 영웅’ 황영조의 탄생에 이어 이봉주가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지난 수십년간 케냐,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독무대가 됐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만 체력과 정신면에서 강한 아프리카 선수들의 질주에 돈 많은 나라의 선수들이 전혀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스포츠 세상을 열겠다는 듯 아프리카 흑인선수들은 마라톤으로 확신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평등성을 다른 어떤 운동보다 잘 보여주는 마라톤은 현대 자본주의의 건강성을 지켜나가는 데는 나름 역할과 책임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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