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12개 시·도 교육감들이 정부의 ‘정시확대’ 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교육감들은 “정시 비율 축소, 고교학점제 실시가 현 정부의 공약이었는데 대통령이 갑자기 정시 비중을 높이겠다고 말해 교육계와 시민·사회단체를 당혹스럽게 했다”고 지적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년에 두 번 치르고, 전 과목을 절대평가하자”는 자체 대입안을 내놓았다. 또 “대입정책이 정치논리가 개입되지 않도록 정책연구에 교육부가 빠져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입 제도가 움직이는 시대는 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교육을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교육감들이 할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개선연구단이 내놓은 보고서가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학부모, 학생은 제외한 전국 고교 교사 13만 42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였다니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내세운 공약이 국민정서와 맞지 않다면 수정하는 것이 올바르지, 방향이 잘못된 공약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이에 맞춰 전교조가 중심인 고교 교사 1800여명이 ‘정시 확대 철회와 수능 자격고사화’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통해 “그동안 교사들은 다시 교실을 살려내기 위해 10년 가까이 엄청난 수업혁신과 평가혁신을 이뤄냈다. 이제 그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지금 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퇴직 전 10여년 동안 진보교육감과 전교조에 장악된 학교가 붕괴되는 현실을 비판하다 힘에 부쳐 좌절감에 퇴직했다. 심지어 혁신학교 근무 할 때도 수업혁신과 평가혁신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혁신학교 보고서에서만 봤다. 실제로 혁신이 일어난 학교를 목격한 적이 결코 없다.

교육감들이 “정시확대는 토론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 등으로 깨어난 교실을 다시 잠자는 교실로 만든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전교조 교사들의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스스로 전교조와 발을 맞추며 교육에 정치논리를 개입시키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프로젝트 수업은 각 조에서 우수한 학생 몇명이 준비하고 의욕 없는 대다수 학생은 덩달아 점수를 받아 급우간 불협화음이 잦다. 지식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않은 토론으로 학교 토론 수업은 말장난으로 끝나기 일쑤다. 학교 현장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수능을 절대평가하면 동점자가 수만명씩 나와 변별력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 결국 내신 성적, 면접, 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등으로 평가하는 방법 외엔 없다. 정시확대는 아무 의미 없게 되고 수시·학종을 다시 늘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교별로 수준 차이가 큰 내신과 수행평가를 절대평가 해 대입에 일정 비율 반영하고 수능을 상대 평가해야 실력 순으로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다. 수행평가가 교내에서 학생의 수업능력 평가로 끝나지 않고 외부기관에서 대행하는 등 부정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을 모른다.

수능은 한 줄로 세워도 성적이 우수한 순서로 선발하니 결과에 수긍을 한다. 수시·학종은 줄이 너무 여러 개라 어느 줄에 서야 할지조차 알기 힘들다. 심판과 짜고 편법이나 새치기도 할 수 있다. 학생의 능력이 부족하면 부모의 재력, 권력으로 아빠 찬스, 엄마 찬스도 가능하다. 심지어 제대로 된 시험 한번 안보고도 명문대, 의전원, 로스쿨까지 학종으로만 합격한다. 달리기 시합에서는 속도만 보고, 높이뛰기 시합에서는 높이만 봐서 순위를 매겨야 하는데 심판의 마음에 드는 자세나 태도를 지녔다고 1등을 주면 누구도 수긍하기 힘들다.

지난 10여년 공교육이 급속히 붕괴된 이유는 진보교육감들이 선거로 대거 당선되고, 전교조가 혁신적인 교육이라 칭송하는 일본 교육학자 사또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란 검증되지 않은 학설을 학교에 무분별하게 도입한 탓이다. 이제라도 일본 학자의 학설이 우리 교육 실정에 맞는지 제대로 검증해봐야 한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 학생들마저 외면하며 혁신학교 지정취소를 요구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혁신학교 확대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금 학교와 교실이 정상적이라 보는 사람들은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교사들뿐이다. 학생이 공부 외에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 수시·학종을 고집하는 교사들은 진정으로 학생을 위해서인지, 자신을 위해서인지 교육자로서 양심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대입이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정시를 확대해 입시 제도를 단순화 시키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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