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외래교수

ⓒ천지일보 2019.11.8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최근 단계적 모병제 전환으로 정규군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했다.

내년 총선 공약으로 모병제 도입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당 정책위원회 등에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공식 제안한 셈이다.

모병제 도입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다가오는 인구절벽이다. 주요 병역자원인 19~21세 남성이 2023년까지 100만에서 76만명으로 급감이 예상되고 있다.

또 현행 징병제하에서는 첨단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강군 실현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지금처럼 20개월 정도만 복무해선 정예군을 양성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어 왔다. 모병제 전환으로 창출될 경제효과도 상당히 크다고 내다봤다.

또 군 가산점 찬반 논란, 병역기피, 군 인권 학대 등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하지만 병역문제를 이렇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또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철학적으로 살펴보면 모병제는 개인주의적 전통과 자유주의적 가치의 구현으로 볼 수 있다. 모병제는 한마디로 징병 문제를 시장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모병제를 시행한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벌어진 시절에 징병제와 동시에 대리인을 고용해 대신 군대 나가게 하는 대리복무제가 시행됐다.

전쟁에 나가 대신 싸울 대리인을 고용한 사람으로는 앤드루 카네기, J.P. 모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아버지, 플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버지, 그리고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체스터 아서와 글로버 클리블랜드 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남북전쟁 때의 이 병역제도는 병역을 할당하는 정당한 방법일까? 즉 돈 있는 사람들이 대리인을 고용해 자기 대신 싸우게 하는 이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이런 방식을 정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 대리인을 고용해 자기 대신 싸우게 하는 행위는 부당하고 정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징병제가 좋은지, 아니면 100% 모병제(자원병제)가 좋은지.

징병보다 모병이 좋다? 하지만 이 경우 어려운 질문 하나가 생긴다. 부자가 자기들의 전쟁을 대신 싸워줄 사람을 고용한다는 이유로 남북전쟁 때의 병역제도를 부당하다고 말한다면 모병제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용하는 방법은 다르다. 앤드루 카네기는 자기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 직접 돈을 지불한 반면 오늘날에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울 사람을 정부에서 모집하고 납세자가 단체로 그들에게 돈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입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용해 그에게 목숨을 걸고 대신 전쟁을 치러 달라는 셈이 아닐까? 이 경우 앞의 경우와 도덕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남북전쟁 때 대리인을 고용한 제도가 부당하다면, 모병제 역시 부당하지 않은가?

징병제도, 모병제 문제를 단순히 사회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