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한산사(寒山寺)는 옛 소주성에서 서쪽으로 십리 정도 떨어진 풍교(楓橋) 곁에 있는 사찰이다.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라 절은 산속에 있다는 우리 인식과 달리 수많은 물길들 사이에 다른 건축물과 같이 얌전히 앉아 있다. 불교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양(梁)의 천감(天監) 연간에 세워졌으며, 당(唐)의 시승 한산자(寒山子)와 습득(拾得)이 거처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웅전 뒤의 한습전(寒拾殿)에는 망울진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한산자와 묵묵히 귀담아 듣는 습득의 상이 있다. 그들은 하나는 말하고 하나는 듣기만 했기 때문에 유별나게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한산사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긴 복도에 걸린 글씨들이다. 모두 한산사를 유명하게 만든 당의 시인 장계(張繼)가 남긴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칠언율시이다. 풍교는 한산사 주변을 흐르는 운하에 놓인 작은 다리이다. 그 무렵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 밤에 풍교에 배를 대고라는 제목의 이 시는 한산사의 종소리와 수국(水國)의 달밤이 주는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가장 절묘하게 표현하였다고 하여 널리 사랑을 받았다.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외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

달이 지니 까마귀 울고 찬 서리는 하늘에 가득한데, 강교와 풍교에 댄 어선의 불빛에 시름에 겨워 졸고 있구나. 고소성 밖 한산사,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리네.

중국사상 가장 화려했던 당대에도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배를 타고 놀다가 밤이 깊으면 풍교에 배를 대고 한산사의 종소리를 들었다. 어선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물위에 빛나는 절묘한 감흥에 젖으면, 시를 짓지 않고 장계의 풍교야박에 공감하는 비문을 썼던 것이다. 그 이상의 절묘한 표현이 없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공감하는 그 멋스러움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러나 같이 풍교야박이라도 글씨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 그것으로 감흥을 대신할 수 있었다.

유월(兪樾)은 매끄럽고 부드러워서 사랑하는 여인과 마주앉은 것 같고, 유해속(劉海粟)은 호랑이 걸음처럼 웅혼해 지기들과 천하대사를 논하다가 격정을 못 이긴 것 같고, 진운(陳雲)은 취흥이 도도해 일필휘지로 마음을 담은 것 같고, 문징명(文徵明)은 가을 계곡을 흘러가는 청량한 물줄기처럼 유연하고, 송왕규(宋王珪)는 단정한 청백리의 풍모가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실질적인 창시자 이대쇠(李大釗)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고집스러운 것 같으며, 장계의 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정에 겨워 서로를 애무하는 것 같고, 전태초(錢太初)의 전서는 사람들이 나란히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고, 화인덕(華人德)은 얌전한 새색시가 남편을 기다리며 조바심 하는 것 같다.

갖가지의 글씨를 보면서 내용과 정서를 글씨에 융합시키는 것이야말로 한문을 공부하는 진수라는 생각이 든다. 달도 없고, 서리도 없고, 풍교도 보이지 않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도 없는 은은한 안개에 잠긴 한산사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종소리뿐이다. 종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고 하니 나는 홀로 익혀온 글씨에 나의 마음을 담게 해달라고 빌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은 주원장이 제갈량의 출사표에 쓴 소감이다. 글씨는 사람과 같다는 뜻이다. 글씨에 인격이 묻어난다니 문득 글씨를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 인격부터 먼저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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