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다. 대박이 터질 조짐이다. 한국 영화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위기론이 나오고 있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흥행 성공과 함께 논란도 있고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 마음으로 즐기던 모습 대신 논쟁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주인공이 가사노동, 육아, 직장, 시댁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이 빙의에 걸려 많이 아프다는 사실 말고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헛된 상상도 없고 엄청난 과장도 없다. 현실을 이야기라는 그물로 잘 엮어 냈을 뿐이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음에도 공감의 지점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래 주인공 세대 여성이라면 더욱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공감의 지점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더라도 전체 맥락으로 보자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같은 세대 같은 여성이 아니어도, 내 딸이나 내 누이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여성들의 삶이 김지영의 삶으로 일반화 되는 지점에서 딸칵 걸리고 만다. 엄마 세대의 아픔이 왜 80년대생 김지영의 것인 것처럼 보여 지는지, 그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쟁과 갈등이 촉발된다. 젊은 남자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엄마들이 고생한 것은 알겠는데, 82년생 김지영의 고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생으로 치자면 남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프냐? 정말 아프냐? 얼마나 아픈데? 나도 엄청 아프거든!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픈 건 똑같은데 누구는 아프다고 알아주고 누구는 아파 죽어도 모른 척 하고, 그게 섭섭하고 불공평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하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두들겨 맞는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가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진짜 사나이’라는 군가다. 요즘은 군가도 힙합처럼 부르지만 예전에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한 손은 허리에 올린 채 나머지 한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진짜 사나이’를 부르며, 자신이 진짜 사나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최면을 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가혹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부모 형제들이 모두 나를 믿고 단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가난한 부모들은 등골이 휘었고, 누이들은 학교 대신 공장에 가거나 버스 차장을 했다. 공순이라 놀림을 받으며 동생들 오빠들 학비를 댔다. 82년생 김지영의 엄마들이 그랬다. 그래서 그 세대 남자들은 누이들한테 엄청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우는 것이다. 미안해서.

82년생 김지영의 부모들은 82년생 김지영의 행복을 바라고 살았다. 오빠들 학비를 대기 위해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다 손가락이 찢어졌던 엄마는, 82년생 김지영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 소원을 품고 죽기 살기로 살았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자식 김지영이 힘들고 아프다고 하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김지영들은 힘을 내시라, 그리고 쓸데없는 논쟁들은 그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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