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는 사건이 북한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바로 마약의 일상화다. 물론 선진국형 마약흡입은 아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마약을 ‘상비약’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패닉이 아닌가. 심지어 북한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마약이 10대 학생들의 손에도 뻗쳐 학교에서 친구끼리 마약을 권하는 풍토가 만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달 량강도 혜산시 신흥고등중학교에서 학생 5명이 교내에서 ‘필로폰’을 투약하고 밀매까지 하다 단속반에 검거됐다고 10월 31일 전했다.

신흥고등중학교는 간부나 부유한집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로 유명한데, 학생들끼리 서로 약물을 권하는 풍토가 만연하다는 게 량강도 혜산시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얼음’을 해야 어른 취급을 받는다고 전했다. ‘얼음’은 필로폰을 칭하는 북한식 은어다. 북한의 마약문제는 올해 들어서 이전보다 심각하게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과거 외화벌이 차원에서 마약을 밀조해 국외로 대량 밀수출 했었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이 계속되며 점차 어려워졌다. 그러자 마약을 밀조·밀매하던 조직이 내부로 유통시키면서 필로폰 사용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2016년 탈북민 1467명을 대상으로 북한 마약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10∼2012년 탈북민의 13.6%가 마약을 접했다고 답했는데, 이 비율은 2014년 25.0%, 2015년 36.7%로 갈수록 늘어났다. 심지어 2016년 탈북한 2명은 “북한 주민의 90% 이상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북한에서 마약 소비가 이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체계 붕괴 및 의약품 부족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북한 아동들은 면역체계가 약하고 질병에 쉽게 걸리는데, 의약품이 부족하다 보니 오히려 값싼 마약을 투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의료장비가 노후됐거나 백신 및 항생제가 부족해 아동 질병률이 높다. 결국 북한은 1997년 전염병예방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안에는 황당하게도 마취제로 아편을 사용하거나 두통과 소화불량에 필로폰을 사용하도록 했다. 의료품은 부족하지만 마약은 풍부했던 북한으로서는 궁여지책이었던 셈인데, 오히려 마약 중독자를 북한 당국이 양성한 꼴이었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 마약이 보편적으로 유통된 시기는 2010년으로 추정된다. 앞선 보고서는 “2010년 이후 필로폰은 누구라도 접할 수 있는 마약이 됐고 일정 기간 주춤했던 아편의 인기는 최근 국경 지역에서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며 “현재 북한 주민에게 필로폰은 별 것 아닌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다수의 조사 대상자는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필로폰은 일상적인 인사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자택이나 한증탕(사우나), 기차, 상을 치를 때, 야간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심지어는 감기, 두통, 복통, 대장염뿐 아니라 각종 장기 및 혈관 질환에 사용 한다”고 답변했다.

현재 북한 내에서 마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지역은 평양시로 알려져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평양시 곳곳에서는 필로폰을 판매하는 일명 ‘소분집’도 다수 운영되고 있는데, 업주 대부분은 판매자이면서도 중독자다. 북한에서 유통되는 필로폰의 거래가격은 1g당 한화 약 1만 7000원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마약 수요가 많은 평양시만 한화 약 3만 5000원 이상이고 나머지 지역은 가격이 비슷하다. 한국의 마약 거래가격이 1g당 31만원임을 고려하면 적게는 18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북한 사회는 상식이 무너지고 비상식이 창궐하는 나라다. 선진국에서는 엄중하게 다뤄지는 마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상으로 되고 있으니 북한은 정치와 군사에 이어 사회도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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