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30일은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판결이 있고 나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 아베 정권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면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법을 지키라고 윽박지르고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에게 보상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비난을 거듭하다가 지난 7월에 이르러서는 경제침략을 감행했다.

불행히도 아베 내각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지지가 매우 높다. 지금 일본 사회는 혐한이 판을 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본의 과거 침략 행위가 문제의 근본이라는 말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진실을 마주하고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몸으로 실천하는 일본 사람들이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사죄를 거듭했다. 4년 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해 무릎 꿇고 사죄했다. 작년에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관을 방문해 깊이 사과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넉 달 전에도 한국을 방문해서 “피해자가 더는 사죄가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한다고 했다. 남북 분단에 큰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말도 했다.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필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지난 6월 빈민 대중운동을 하는 최인기씨가 청계천 인근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그 자리에 갔더니 일본의 노무라 모토유키 선생이 참석했다.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만나 뵙게 됐다. 노무라 선생은 구순을 앞둔 분이다. 불편한 몸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최인기씨와 각별한 인연이 있어서다.

노무라 선생은 1968년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이래 청계천에 살던 도시빈민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도시빈민과 동고동락을 한 사람이다. 사재를 털고 일본 안은 물론 국제 사회의 지인들에게 요청해 한국의 도시빈민을 돕고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지 애를 썼다. 한국을 70번이나 방문했다.

노무라 선생은 노점상들과 청계천 인근 영세상인, 도시빈민의 삶과 함께 한 최인기씨의 삶에 깊이 공감했다. 청계천 도시빈민의 삶을 녹여낸 최인기씨의 사진전에 참석한 이유이다.

나는 노무라 선생에게 힘들게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점에서 감사하다고 말을 건넸다. 필자의 말을 가로 막더니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서 고통을 주었다는 점을 사과하는 게 먼저라면서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표했다. 필자 앞에서 사죄의 마음을 표했지만 그가 사과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한국 국민일 것이고 일제에 고통을 당한 조선 사람들일 것이다.

28일 일본 학술 단체 조선사연구회는 성명을 통해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은 식민지 지배 하에서의 가해·피해 사실과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와 배상을 하며, 피해와 가해사실에 대해 미래 세대에 교육하는 책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역사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홋가이도대 명예교수이자 한·일 동학기행 시민교류회 대표 이노우에 카츠오씨는 30일 나주시를 방문해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한 잔혹한 토벌전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발굴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깊이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2017년 92세의 노 교수 나카츠카 아키라씨가 동학혁명 추모탑 앞에서 “조상들의 잘못에 대해 사죄”한 일이 있지만 한국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사죄하는 일은 큰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노우에 교수 일행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역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눈 감지 않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일본 사람들이 울림을 주는 시대이다. 일제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바로 잡는 일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시대적 과제이다. 양심적인 일본사람들과 손잡고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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