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0일 오후 인천공항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올 설 연휴 최대 5일··· 해외 가족여행 급증
제사 음식 대행업체 명절마다 ‘즐거운 비명’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설’은 세시(歲時) 원단(元旦) 신일(愼日) 등으로 불리며 단오 대보름 추석 동지와 함께 주요 5대 명절로 오늘날까지 한국인에게 중요한 절기로 여겨졌다. 여기서 신일(愼日)은 삼갈 신에 날일을 조합한 말로 ‘설에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집안에서 가족과 지내며 한해를 되돌아보고,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날’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각 가정에서는 제를 올리고, 가족과 떡국을 먹고 윷놀이를 즐기는 일을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의 설은 전통적인 모습을 찾기 어려울 만큼 변화하고 있다.

◆설 연휴, 공항 최대 인파 예상
서울 강남구에 있는 A여행사를 찾은 주부 김영순(36, 가명) 씨는 이번 설에 해외여행을 갈 생각에 들떠 있다. 김 씨는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설 연휴에 가족 여행을 가게 됐다”라며 “가족애를 더욱 다지는 차원에서 1월 말부터 7일간 해외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설을 2주 보름여 앞둔 지난 17일 국내 대표 여행사와 설 관련 업체를 상대로 달라진 풍속도를 실감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17일 여행사를 상대로 한 전화조사에서 업체들은 대부분 한국의 설이 달라진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설 연휴동안 여행 예약을 하는 사람이 급증한 것이 그 예다.

여행 서비스 전문 업체 김태완 SK투어비스 패키지총괄팀장은 “예전에는 차례 때문에 설날 아침 이후 여행 계획을 잡는 고객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설 전에 예약을 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설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덧붙여 “17일 현재 예약 현황을 보면 개인·부부 등 전체 유형 중 가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70%”라며 “어차피 가족과 보내는 설을 좀 더 색다르게 보내고자 하는 의미에서 여행을 선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한국인의 생활수준이 나아진 것도 여행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설 연휴 국제선 예약률은 1월 둘째 주 현재 태국·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괌·사이판 같은 대양주 노선 예약률이 99%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천공항은 이번 설에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늘면서 인천국제공항 출국자 수가 지난해 추석보다 많은 하루 평균 4만 7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항공여행전문사 에어몰 항공예약부 관계자는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을 여행 가고 싶다는 고객부터 추운 날씨 때문에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는 고객 문의가 많다”며 “대부분 1월 29~30일에 출발해 연휴가 끝나기 하루 이틀 전 도착하는 식으로 장기 여행을 간다”고 전했다.

올해는 특히 주말이 포함돼 연휴 기간이 최대 5일에 달한다. 그러나 이를 지난 연휴 기간에 주말이 포함됐던 포함됐던 2008년 설(2월 6일~10일)과 비교해 본 결과, 이번 설 여행자 수가 당시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여행객이 가장 많았던 지난 2008년에 비해 올해가 20.1%가량 예약자가 많았다.

◆제사상 택배로 받는 현대인들
“예약하시는 분의 10%는 시어머니예요!” 제사 음식 대행업체 직원은 설 2주 전 예약이 90% 이상 꽉 차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황미혜 대대로 상차림 대표는 “주문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20~30대 단골손님이지만, 남편이나 아버지가 직접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고 시어머니가 직접 예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업체는 16일 현재 예상한 400개 제사상 중 90% 예약이 찼다. 업체는 이마저도 지난해 12월 말부터 연초에 주문이 완료된 것이라고 전해 남은 물량을 채우기는 어렵지 않아보였다.

제사상은 10~20만 원선. 고객이 원하는 지역 어디든 택배로 발송된다. 제기는 일회용 종이 그릇으로 초·향 등은 자체 구입해야 한다.

오혜정 예지향 홍보담당자는 “최근에는 인터넷 주문 서비스가 발달해 입금과 배송이 편리해졌다”며 “택배 시스템도 잘 갖춰져 스키장이나 콘도, 별장 등으로 배송을 한다”고 전했다.

▲ 명절 때마다 제사 음식 대행업체들이 많은 주문으로 호황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제사 음식 대행업체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라온 제품들.

황 대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명절 증후군 등 스트레스로 고부간의 갈등을 겪는 것보다 가족 간의 평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며 “나이가 들어 직접 제사상을 차릴 수 없고 며느리에게 시키긴 어려운 시어머니들이 주로 대행업체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풍속도와 함께 올해는 구제역·AI 재앙까지 겹치면서 전국에 설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전남 담양, 경북 김천 등에서는 벌써 자녀와 친지의 방문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구제역 여파에 한우·돼지고기 값이 뒨 데 이어 제수와 생필품 물가도 올라 이번 설 주부들의 장바구니 무게는 더욱 가벼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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