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전통 복주머니 형태인 귀주머니와 오방주머니(오방낭자), 잣씨 장식이 수놓인 두루주머니 (사진제공: 규방문화연구소)

길상문양ㆍ문자문 등으로 나쁜 기운 물리쳐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곡선의 자태를 뽐내는 전통 한복에는 소지품을 넣어 보관할만한 주머니가 없다. 그래서 선조들은 한복에 주머니를 만드는 대신 옷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머니를 재단했다. 이 중에서 일반적으로 ‘복을 담는 주머니’란 뜻의 복주머니가 가장 일반화 됐다.

복주머니는 ‘복(福)’이라는 단어와 ‘주머니’의 합성어로 전통 방식의 주머니를 통칭한다. 주머니에는 ‘담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으므로 복주머니는 장식적인 효과와 복을 비는 기복 요소가 함께 담겨 있다. 이는 ‘치성을 드린 용품이 복을 부르는 매체가 된다’는 속신(俗信)이 담긴 전통 사상과도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주머니는 크게 형태 용도 주름수 소재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복주머니는 형태별 분류에 속하며 다시 ‘두루주머니’와 ‘귀주머니’로 나눌 수 있다.

흔히 복주머니라 하면, 정초에 길한 물건들을 주머니 안에 넣어 매어주던 두루주머니를 떠올리는데, 밑이 둥글고 입부분에 잔주름을 지어 조인 주머니를 말한다. 두루주머니 안에는 전통적으로 ‘액을 물리치고 화를 면한다’는 의미로 곡식을 넣어, 그 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유교적 이념으로 남녀의 생활이 엄격히 구분됐던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은 안채, 남자들은 바깥채에서 분리된 생활을 했다. 이때 외부 출입에 제한이 많았던 여자들은 생활공간인 안채 즉 규방에서 주머니를 만들고, 바느질이나 자수 등을 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규방은 한정된 여성만의 공간으로 억제와 규제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창의적 욕구와 예술적인 재능을 이끌어내는 공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변인자 규방문화연구소 소장
변인자 규방문화연구소 소장은 “규방 안에서 만들고 사용한 모든 규방공예품에는 복을 비는 ‘기복신앙’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담겼다”며 “규방공예에 속한 복주머니는 가족이 평안하고 건강하게 일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겼으며, 그 근본은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도 평생을 손바느질하며 전통과 문화를 공부한 사람으로, 바느질 안에는 단순히 전통을 향한 열정보다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조들은 우리나라 전통 오방색을 복주머니에도 입혀 벽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오방색을 사용한 오방주머니, 다시 말해 오방낭자는 ‘액을 면하고 한 해를 잘 보내라’는 의미에서 붉은 빛깔을 내는 종이에 황두(누런빛이 나는 콩의 하나) 볶은 것을 싸서 보냈던 주머니다. 이 주머니는 동서남북과 중앙 즉 ‘오방위’를 뜻하는 청 홍 백 흑 황색으로 주머니를 지어 만들었다.

주머니 문양에는 복을 나타내는 박쥐ㆍ기러기ㆍ구름이나 사령(四靈), 연꽃 모란 석류 국화 복숭아 등 길상문양이 주로 수놓이거나 직조됐다.

문양보다 뚜렷한 의미를 지닌 글자무늬(文字紋)는 수(壽) 복(福) 희(喜) 만(卍)자 등을 사용했다. 이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인간이 누리고 싶어 하는 자연ㆍ이상향ㆍ행복을 담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물건을 싸고 담아 보관했다. 변 소장은 “주머니를 통해 알 수 있듯,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것을 드러내기 보다는 담았으며, 꺼내놓기 보다는 고이 모셔뒀다”며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바르게 알아야 새로운 것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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