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성단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단군왕검 ‘제사장’ ‘왕’ 뜻해 “천제 드리는 날이 천국 되는 날”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의 차이점을 하나 꼽으라면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조상 대대로 왕실은 왕실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규모와 절차가 복잡해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참견 말라’는 말까지 나오게 될 정도로 각 지방의 관습이나 풍속, 가문의 전통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오늘날 각 가정에서는 여전히 조상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설이나 추석 때에 차례를 지내왔다.
제사와 차례는 시대적 이념과 상황에 따라 형식은 변했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이다. 이에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일컬었던 우리 민족의 설날을 맞아 종교적 관점으로 본 차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 한민족, 하늘을 섬긴 ‘천손’의 변천사

[천지일보=김종철, 최유라 기자] 우리나라 전래동화 <해님달님>을 보면, 오누이가 호랑이 먹잇감에서 벗어나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금 동아줄을 잡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이 밖에 산신령, 선녀, 삼신할머니 등의 초월적 신분을 가진 존재들이 전래동화 속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뿐인가.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산삼을 얻기 위해 목욕재계는 물론 산신령에게 제(祭)를 올린 뒤 입산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또 우환이 닥칠 것을 염려해 밤에 정화수를 몰래 떠 놓고 달에게 간절히 빌기도 한다.

신과 사람의 사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보기 때문에 ‘천지차이’라고 말한다. 또 지극정성을 들이면 하늘도 감동해 도와준다는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속에서 신령한 존재, 즉 하늘을 믿고 섬겨왔음을 알 수 있으며 하늘에 예(禮)를 갖췄던 민족이었다.

우리나라는 농경문화를 시작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시대부터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제사가 시작돼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祭天儀禮)로 시행됐다.

하늘의 자손이라 자부했던 우리 민족이 오랜 상고시대부터 매년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단군께서 친히 하늘에 제사를 올려 국태민안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 제천단이 바로 ‘원구단’이며 원구단 천제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백제가 다 같이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다’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에 제사 지낸다’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제천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사’ 성종 2년(983년) 정월조에 나타난 ‘왕이 원구(圓丘)에서 기곡제(祈穀祭)를 올리고, 몸소 적전(籍田)을 경작하였다’는 고려의 원구제는 5방의 방위천신(方位天神)과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황천상제(皇天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 조선 초 제천의례는 제후국으로서는 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명분론과, 이와 달리 농업국가로서 전통적 기우제(祈雨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갈려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태조 3년(1394년)에 조선의 동방신인 청제(靑帝)에 제를 올리기 위한 원단이 설치됐고, 세종 원년(1419년)에 실시된 원구제(園丘祭)도 오랫동안 계속되던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시행했다.

▲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참성단에서 모여 천제(天祭)를 드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3일 개천절에 개천대제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강화군청 제공)

조선 초부터 억제된 제천의례는 세조 2년(1456년) 일시적으로 제도화돼,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에 실려 있는 고려의 원구단(圓丘壇)을 참작해 1457년 원구단을 신설하고 제를 드리게 됐다. 그러나 이 원구제도는 세조 10년(1464년)에 실시된 것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원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제천의식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광무(光武) 원년(1897년) 10월 고종 황제의 즉위를 앞두고 남별궁(南別宮) 터에 원구단을 쌓았고, 10월 11일 고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원구단에 나아가 천신에 고제(告祭)한 후 황제에 즉위했다.

또한 일월성신 곧 하늘에 제를 올렸던 ‘참성단’도 우리나라가 하늘에 제를 올렸던 민족이었음을 유적이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참성단도 정부에서 정기적인 지원을 끊는다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일지라도 금세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했다.

훼손 염려로 개방이 쉽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1년에 많으면 2번 정도 형식적인 행사로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들도 드물다.

오늘날 제사를 한 번 살펴보자. 우리나라 민족 대명절은 크게 설날과 추석으로 나뉜다. 설날의 차례(茶禮)와 추석의 제사(祭祀)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당일 전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갈히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는 제사를 드리기 전날 갖추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제사예법이다. 그러나 하늘 신(神)을 위해 제를 올리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오늘날 제사는 하늘에 제를 올렸던 지난날의 의미보단 돌아가신 조상님을 기리는 날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조상에게 정성을 들이는 모습마저도 줄고 있다.

이에 현 시대를 통탄한 김정 한국전통예절연구원 대표는 가정에서부터 예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5만 원 주고 조상님 묘 벌초를 대신 맡기고, 콘도에 가서 30만 원 내면 제사상이 다 차려지는 세상”이라며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굳이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만은 우리네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천심(天心) 가진 자 천제 주관

참성단은 상고시대 단군왕검이 지은 곳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해 ‘민족 성지’라 불린다. 천제를 드린 환웅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동굴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참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랑이는 참지 못해 동굴을 뛰쳐나갔지만 곰은 끝까지 인내해 사람이 된다.

이 사람이 바로 여자, 웅녀(웅녀)다. 환웅은 웅녀와 혼인을 해 단군왕검을 낳았다. 고조선을 세운 우리나라 시조의 최초 임금이 바로 단군왕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는 “우리 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늘과 만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온 국민이 단군할아버지 밑에서 한 가족”이라며 “하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전했다. 즉 우리 민족이 하늘의 자손 ‘천손(天孫)’임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 단군이야기를 하나의 설화로 여겨 신뢰를 얻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해 김용남 대림대 철학과 교수는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야사(野史)에 보면 토테미즘 신앙에 근거해 웅족과 호족 중 웅족의 공주가 간택되고 환웅과 결혼한 것이 우리 조상의 뿌리가 된다고 나오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며 “역사·문화·철학 연구가들이 모여 우리나라 뿌리를 정립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 설날에 차례(茶禮)를 드리고 있다. (한국전통예절연구원 제공)

단군왕검은 아버지 환웅처럼 우리나라 제정일치 사회를 이끌었던 표본이었다. 단군왕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왕’을 뜻한다. 이들은 제사상 신분으로 제사를 주관했고, 왕의 신분으로 국민을 다스리고 통치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문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이기동 교수는 “하늘의 마음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양심”이라며 “양심을 지키는 사람은 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형제가 서로 사랑하듯이 하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서로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늘의 마음을 가진 자들보다 ‘불량양심자’들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면 왜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교수는 “양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성인(聖人)들이 논어·금강경·성경 등과 같은 많은 경전들을 남겼지만 공자·맹자·예수와 같은 위인들이 현재 존재하지 않아서 행복을 알려줄 진리를 못 가르쳐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사람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올바르게 경전을 깨달았거나 진리를 알았다면 진리는 하나이므로 다른 종교와도 하나가 될 수 있다면서 종교 간에 싸울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또 이 교수는 “자연계에서도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요즘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고 질투하는 것은 마음이 추워서 그러는 것”이라며 “다시 봄과 같은 시절이 오면 하늘의 마음을 품고 천제를 지낼 날이 반드시 온다”면서 “그날이 바로 천국이 되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교수는 우리나라 민족의 고유문화가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로는 서양문화와 매번 제사로 인해 옥신각신하는 개신교인들의 영향도 한 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신교인은 진정한 우상이 무언인지 모르고 있다”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하늘의 틀에 갇혀서 자신과 다른 하늘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종교 간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면서 “조상신을 우상으로 여기는 것도 이러한 오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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