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입 정시 비율의 상향을 포함한 입시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자 교육부가 멘붕에 빠졌다. 지난해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과 대입제도 공론화위원회의 정시 30% 확대 결정에 대해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해도 교육부는 “정시 확대는 없다”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이번 조국 자녀의 학종 의혹으로 다시 불거진 정시 확대 주장에 대통령이 손을 들어주자 교육부가 다시 말을 바꿨다.

교육부는 “학종 실태조사 결과 및 학종 쏠림 현상이 큰 대학과 협의를 거쳐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도 정시비율이 23% 수준이고 2022학년도 정시비율마저 30% 수준에 불과하다. 정치에서 자유로워야 할 교육이 매번 정치적 목적에 따라 휘둘리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내친김에 정시를 최소한 50% 이상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야 한다. 각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해 수험생이 선택할 수 있도록 최소한 절반 정도의 비율은 유지돼야 한다.

대통령과 교육부의 태도 변화에 전교조는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고 교육부도 정시 확대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대통령이 이를 언급한 게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학종이 확대되던 10년 동안 ‘잠자는 교실’이 깨어나고 있었는데 다시 공교육이 붕괴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현행 대입제도 하에서 생기부 작성 권한으로 절대적으로 갑인 교총이나 전교조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시 전형료 장사를 해야 하는 대학도 반대에 가세했다. 수시·학종 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은 스펙 품앗이가 가능한 교수, 정보력과 자금력으로 각종 스펙을 만들어줄 수 있는 상류층, 학종 컨설팅으로 돈을 버는 사교육업체, 생기부 작성을 빌미로 학생 위에 군림하려는 교사들 외에 없다.

전교조의 논평대로 고등학교는 잠자는 교실이 깨어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학종 때문에 잠을 못자고 있다. 고교 3년 내내 내신, 수행평가에 비교과까지 챙겨 자소서에 한 줄이라도 적을 수 있는 활동을 고르느라 기진맥진이다. 자율활동, 동아리와 봉사활동, 진로활동을 통해 창의적인 사고를 갖춘 우수한 인재를 만든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정시가 23%에 불과하니 대다수 학생이 ‘자동봉진’에 매달려 잠이 부족해 공부할 시간조차 없다. 낭만적인 학창생활, 우정 따위는 아예 없다. 정시를 80% 이상 확대해야 학창 생활을 즐기며 공부 하나에만 매진할 수 있지만 급격한 확대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점진적 확대가 바람직하다.

조국 자녀 사태를 통해 논문 공저자, 대학총장 표창장, 학회 인턴, 해외 봉사활동 등이 수시 입시에 사용되는 줄 처음 알게 된 국민들도 많다. 이런 활동은 고교생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류층 부모를 둔 학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학종과 수시가 상류층의 편법 진학의 도구로 변질 됐다는 것이 증명됐다. 단순히 편법 입시 차원을 넘어서 공정사회의 근본을 깨트리게 만드는 수시·학종의 제도적인 허점이 드러났으니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수시·학종 탓에 고1때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에게 학교 차원에서 성적 몰아주기가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다. 대신 중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가난하거나 대학을 포기한 아이들을 제외한 학생 대부분이 자소서 컨설팅을 통해 자소설을 쓰고 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순수한 목적이 아닌 생기부에 어찌 쓸지부터 고민하고 활동한다.

로스쿨이 사법고시보다 공정하고 의전원이 의대보다 공정하다고 생각된다면 수시·학종이 정시보다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난 환경, 부모의 권력,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대학입시는 공정하지 않다. 정시 위주 입시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부모가 누구든, 어느 지역에 살든 자기 노력에 의해 판사, 검사, 의사 등 전문직이 될 수 있었다. 오롯이 아이들만의 실력, 노력으로 판가름이 나서 공정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교육부장관의 역할과 교육부의 존재 자체가 의미 없게 됐다. 어떤 정치적 고려요소가 없이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 교육제도임에도 갑작스런 발표로 전국의 학부모, 학생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100년은 아니어도 최소한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피해가 없도록 3년은 내다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입시 제도를 기득권층인 교수, 교육전문가들에 맡기니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한다. 대학입시를 치른 학부모와 학생, 대입을 치르려는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것이 가장 부작용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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