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 8월 안호영 의원은 전월세 신고제 입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토부와 상의해서 마련한 법안이다. 지난달에는 국토부가 계약갱신제 도입 방침을 발표했다. 계약갱신제는 세입자가 원하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제도이다. 두 방안은 세입자와 주거·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제도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단순한 반대가 아니고 ‘극렬 반대’다. 전월세 신고제 법안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입법 제안 의원과 국토부에 집단적 항의를 했다. 계약갱신제 도입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협회가 보이는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세입자가 주거 약자라는 건 공인중개사가 더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 세입자 권리 보호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약했다. 지금까지 국가와 사회는 세입자 권리 보호를 가로 막는 역할을 하기까지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2년마다 이사 가게 할 수 있는 조항을 둠으로써 세입자들이 만성적인 주거 불안에 떨도록 만들었다.

세계 문명국 중에 ‘2년 거주 후 퇴거 요구’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명문화해 놓은 나라는 없다. 모든 문명국들이 세입자를 주거약자로 보고 세입자가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원하는 만큼 거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한 집에서 안정되게 머무는 것이 ‘주거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 싶으면 ‘강력 반대’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개사협회가 보이는 행동은 너무 심하다.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국민의 절반에 이르는 세입자 대중의 권리문제이고 주거권 보호라는 공익 문제다. 공인중개사들이 만나는 고객의 절반은 세입자다. 고객의 권리 보호 방안에 대해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 같다고 해서 ‘극력 반대’하고 나서는 건 공인중개사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행동이다.

지금까지 공인중개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서비스를 소홀히 했다. 복비 받을 건 다 받고 주택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정보 전달은 정확하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공인중개사의 의무 소홀로 보증금 떼이는 사례도 많았고 입주하자마자 하자 투성이인 집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하는 세입자도 많았다.

정부와 여당은 전월세 신고제를 금방 도입할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는 총선 후에 도입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이 보던 모습이다.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곧 시행할 것처럼 꺼냈다가 특정 직군의 사람들이 반발하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다. 언제 이후로 미루겠다고 말하는 건 사실상 기약 없이 미루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약자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입자들도 문재인 정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이전 정권이 보인 행태와 다를 게 없다.

전월세 실태를 파악하는 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전월세 신고제는 진작 도입했어야 할 제도다. 아직까지 도입이 안 된 건 정부와 관련 부처의 직무유기이다. 또 다시 미루겠다고 하는 걸 보니 직무유기를 계속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내년 총선이 걱정돼 미룬다고 하는데 공인중개사 표는 걱정되고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세입자 표는 두렵지 않은가? 주택 매매 거래는 신고하게 돼 있어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은 투명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반면에 전월세는 신고제가 도입되지 않아 세입자는 깜깜이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인중개사가 이전에 거래 됐던 전월세 가격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서 알려 주는 것도 아니다. 전월세 신고제는 거래에 있어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공인중개사도 정보를 정확히 알아야 책임 있게 거래를 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에게 신고의무를 지우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정도의 역할은 양측으로부터 복비를 받는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신고 의무 부과’가 문제라면 무작정 반대부터 할 것이 아니라 임대인에게 거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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