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신화/뉴시스】 지난 2013년 북한 금강산 리조트 지역에서 등산객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2013.08.15
지난 2013년 북한 금강산 리조트 지역에서 등산객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김 위원장 “시설,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

개성공단기업협회장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 아니다”

현대그룹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

통일부 “우선 구체적인 사실관계 파악 후 대처해 나갈 것”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시설과 관련해 남측 시설물의 철거를 지시해 남북 경협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관련 업계나 정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시설을 방문해 이같이 현지 지도했다.

이 매체는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고, 땅이 아깝다고,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 되었다고 심각히 비판하시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또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은, 6개월 만에 삼지연군 건설현장 시찰.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당 간부들과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천지일보 2019.10.1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출처: 연합뉴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북 경협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금강산 관광시설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만큼 이를 철거하라는 것은 곧 남측과의 협력 없이 북측 독단의 사업을 전개해나가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인 고(故) 박왕자씨 피격사망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2010년 남측 자산을 몰수(정부 자산) 또는 동결(민간 자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부정적인 전망과는 달리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관련 업계와 정부부처에서 나오고 있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김 위원장이 시설 철거에 앞서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를 언급했던 것과 관련해 “현대 아산의 재산권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국제법적으로 따져봤을 때도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또한 합의 과정을 거치라는 것은 일종의 시그널일 가능성이 있다. (철거 지시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올해 4월을 기점으로 해서 별도의 ‘남북경협 TF팀’을 꾸리고 금강산 사업 재계를 위한 자구의 노력을 이어온 현대그룹 측은 자료를 내고 “관광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을 통해 금강산관광 50년 독점사업권을 갖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북측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 외에 따로 전달받은 것이 없다”며 “(우리가) 자료를 낸 것 외 특별하게 더 말씀드릴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한 업계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의 남측시설 철거를 언급하면서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남측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자의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상황에서 ‘남측과 합의’를 언급하며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조만간 남측과의 소통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금강산 남측 관광시설이 10~12년 정도 된 점을 감안한다면 김 위원장이 그간 봐 왔던 최신식 시설들과 비교했을 때 당연히 뒤떨어져 보일 수 있는 점이다. 국가통수권자인 김 위원장이 이에 대해 얼마든지 수정·보완 조치를 고려할 수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관측도 나왔다.

또 다른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지시를 계기로 남북 당국 또는 북측과 사업자인 현대아산 측이 마주 앉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도 “북측의 의도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정례브리핑에서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남북합의 정신, 또 금강산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나온 사실이기 때문에 정부의 어떤 공식 입장을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면서 “북측의 발언 의도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처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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