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바깥일로는 뭐니 해도 한반도 평화가 담보되는 정상적인 북미 간 대화가 시급한데, 들려오는 외교소식통으로는 연말 내 재개될 것 같았던 북미정상회담이 그간의 예비회담 성과로 봤을 때 무위로 끝날 것 같다는 어두운 소식이다. 며칠 전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장면이 보도된바, 큰일을 앞두고 무언가 대사를 결심할 때에 김 위원장이 으레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하니 북미정상회담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은데 대해 미국을 압박하는 어떤 조치가 뒤따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그러한 즈음에 22일 일본에서는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이 거행됐고, 우리정부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 축하하고, 이어서 아베 총리를 만나 그간 꼬였던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해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던바, 현안에 대한 양국 입장차가 워낙 커서 단시일 내 해결책 도출이 어렵다는 전망도 들린다. 하지만 이 총리의 방일기간 중 활동은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이나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조력자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라 외교통들이 예상하고 있으니, 잔뜩 꼬여있는 북미정상회담이나 한일정상간 대화 분위기 조성에 진전이 있어 모두가 바라는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는 않다. 국외적 상황과 마찬가지로 나라 안의 정치문제, 경제문제. 사회문제 등과 관련된 현안들이 꽉 막혀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권이 나서서 풀어야할 과제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나서서 국민화합을 외치고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노력해도 한쪽 역량으로서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기의 반이 지나가지만 정치권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 진정한 여야 협치 없이 사회가 안정되거나 경제난국의 여파를 해결할 수 없었고, 최고 권력자의 선택에서 빌미가 된 ‘조국 사태’의 후유증은 지금까지 보아왔듯 이외의 파장을 몰고 대한민국 사회를 이분화해 ‘내편, 네 편’으로만 몰아가고 있는 현상을 낳았다.

국가에 많고 많은 조직이 있고 그 공공 조직원들인 공직자들이 저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가 바로 서지 않고 잘 굴러가지 않으니 위태하고 불안스럽기만 하다. 협치가 없는 일방정치 아래서는 나타나는 현상들이 올해 우리정치권에 휘몰아쳐온 반작용들이다. 정부가 추진한 경제시책들은 당초 의도한 기대효과가 없어 국민들은 낙담하는데다 정치권은 타협점을 찾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상대에 대해 날을 세운 채 죽기 살기로 강공 자세니 올해만큼 여야가 많이 싸운 적이 어디 있었던가 싶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뉴스나 보도에 따르면, 경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기업과 영세업자들은 그저 울상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 기세는 울울창창(鬱鬱蒼蒼)하다. 정부에서는 ‘검찰개혁’만이 살 길이라는 뉘앙스를 주고, 여당에서는 민생법안이 산적한 가운데에서도 ‘공수처법’ 통과에 혈안이 되고 있다. 사법개혁이 시급하다지만 민생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아무리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한다고 해도 경제가 죽고, 국민들이 경제문제로 허덕인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어느 촌로의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는 지금의 현실이다.

며칠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사극이 있기에 잠시 보았다. ‘여인천하(女人天下)’라는 대하사극인데, 그 속에서 나오는 대화들이 의미가 있어 새겨보았다. 이 드라마를 찾아보니 2001년 2월에서 그 다음해 7월까지 장기 방영된 SBS 월화드라마였던바,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 ‘여인천하’를 원작으로 삼은 150부작 대하사극이었다. 어디까지나 드라마이긴 하나, 138회 후미의 내용은 현실에서 국가의 녹을 먹는 고위 공직자들이 새겨들어야할 ‘철칙’ 같아서 적시해본다.

가죽신을 만들어 생계를 잇는 갖바치가 서생 임백령과의 대화 내용인즉 갖바치가 임백령에게 ‘임금이 성현의 도를 요체 삼아서 정치를 펼친다면 나라기강과 법도가 바로세워진다’는 말을 한 뒤, ‘과거에서 서생들이 숱한 부국강병(富國强兵) 대책문을 올렸지만 이 나라가 이런 꼬락서니를 면치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그러자 서생이 ‘그 까닭을 선생은 아시오?’ 하고 되물으니 갖바치가 말하기를 ‘그것은 조정신료들이 나라를 위한다고 놀려대는 혓바닥만 있고, 가슴속에 우국충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사를 하신다면 혓바닥에 말을 아끼고 가슴속에 우국충정을 채우소서. 그래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정말 바른 말이다. 우리 정치인들과 고위관료들이 입만 벌리면 국민을 위하노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민을 위한 일들이 과연 무엇이 있는지 우리국민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여인천하 사극에서 갖바치 말마따나 혓바닥에서 나오는 우국(憂國)정치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진정 우러나오는 위민(爲民)정치를 최고 권력자와 정치인들은 보여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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