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오랫동안 총력적 대결을 펼쳤던 ‘조국 사태’가 일단락되자 이번에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놓고 여야가 다시 소모적 대결을 펼치고 있다. 굳이 ‘소모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야가 오랫동안 논의한 끝에 이미 패스트트랙에 올라탔을뿐더러 국민여론도 검찰개혁의 핵심 쟁점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찬반을 논의할 단계는 지났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금 국회에서는 공수처 법안을 놓고 다시 지루한 힘겨루기를 벌이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공수처 설치에 대해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수처 설치에 대해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수사청’이라는 악담까지 퍼붓고 있다. 팩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는 무관하게 이런 주장은 ‘정치공세’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명색이 고위공직자 수사를 맡은 정부기구를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현행 정부기구는 모두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을 말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 직속으로 둔다고 해서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구는 단 한 곳도 없다. 우리 헌법이 ‘법치’를 바탕으로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국회의 감시기능을 앞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공수처가 자칫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패스트트랙에는 ‘민주당안’과 ‘바른미래당안’이 나란히 올라 있다. 그러므로 논의 과정에서 ‘제3의 대안’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소권’이 문제라면 얼마든지 재론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더 자유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라면 국민도 힘을 실어 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두 법안을 놓고 무엇이 더 정치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옳다. 그것이 국회의 역할이며 제1야당의 책무다.

지금부터라도 자유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턱대고 악담을 퍼붓는 식의 ‘발목잡기’는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공수처 설치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그 논거를 갖고 국민과 다른 야당을 설득해서 표결로 부결시키는 것이 옳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온갖 비방과 왜곡, 심지어 물리력까지 동원해서 법 절차마저 막아선다면 그것은 구태정치 중에서도 가장 나쁜 행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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