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14

두터운 文 신임 속 장관 지명

윤석열과 검찰개혁 지휘 기대

가족 둘러싼 의혹 터지며 곤혹

초유의 법무장관 자택 압수수색

국론 분열로 대규모 찬반 집회

가족 등 건강 이유로 결국 낙마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현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핵심 공약이던 검찰개혁을 성공리에 이끌 것이란 기대를 모았으나, 후보자시절부터 터져 나온 가족 관련 의혹에 결국 버티지 못했다. 조 전 장관의 후보자 때부터 짧았던 장관 시절을 되짚어 봤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문 대통령을 보좌하기 시작한 조 전 장관은 대통령의 굳건한 신뢰 속에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내년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선 꾸준히 총선 차출론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로 취임한 지 하루 뒤인 지난 7월 26일 2년 2개월 만에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온 조 전 장관을 문 대통령이 8월 9일 법무부 장관에 내정한다. 문 대통령이 가장 큰 신임을 보였던 조 전 장관과 윤 총장을 통해 검찰개혁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조 전 장관이 현 정부 실세였던 만큼 민정수석 시절 인사 실패 등을 거론하며 날카로운 검증을 예고했다. 인사검증을 책임지던 자리에서 직접 인사검증의 도마 위에 올라간 조 전 장관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검찰 특수부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검찰개혁안을 발표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아 있다. ⓒ천지일보 2019.10.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검찰 특수부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검찰개혁안을 발표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아 있다. ⓒ천지일보 2019.10.14

야당의 반대가 심했어도 장관직에 오르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던 조 장관이었지만, 후보자 시절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관련 사건으로 수감된 이력이 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조 전 장관 가족이 출자한 사모펀드 의혹, 이들이 운영했던 웅동학원 의혹 등이 터져나왔다.

결정타는 딸 조민씨와 관련된 의혹이었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는 딸 조씨가 2차례 유급에도 6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논란은 조씨가 한영외고에 다니던 시절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인턴을 한 뒤 대한병리학회에 제출된 의학 영어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알려지며 정점을 찍었다.

이를 계기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조 전 장관의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야당은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좀처럼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합의해주지 않았다. 여야는 8월 26일 9월 2~3일 이틀간 인사청문회를 열기로 간신히 합의했다.

하지만 검찰이 나서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검찰은 8월 27일 부산의료원·서울대·웅동학원과 사모펀드 사무실 등 조 전 장관 관련 의혹에 대한 증거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3일 검찰이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씨 연구실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정 씨의 연구실 문이 굳게 닫혀있다. 검찰은 이날 조 후보자와 가족을 둘러싼 의혹 수사를 위해 조 후보자의 부인이 재직 중인 동양대학교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가 있는 연구실과 사무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내부 문서 등을 확보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3일 검찰이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씨 연구실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정 씨의 연구실 문이 굳게 닫혀있다. 검찰은 이날 조 후보자와 가족을 둘러싼 의혹 수사를 위해 조 후보자의 부인이 재직 중인 동양대학교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가 있는 연구실과 사무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내부 문서 등을 확보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여야도 인사청문회 증인·참고인 채택을 놓고 합의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9월 2일 인사청문회는 물 건너갔다.

이에 조 장관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소명한다며 9월 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전격적으로 열었다. 시간제한 없는 밤샘 기자회견이었다. 이튿날 한국당은 조 장관 기자간담회 내용을 지적하는 반박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지만 이를 기점으로 조 전 장관 지지세도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청와대는 조 전 장관 인사청문보고서를 6일까지 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고, 인사청문회를 미룰 수 없던 국회는 6일 인사청문회를 진행했다.

특히 6일은 정 교수가 자신이 재직하던 동양대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조작해 딸 조씨에게 줬다는 의혹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정 교수를 기소한다는 전망이 있었으나, 인사청문회 마감 직전까지 관련 소식이 없어 그대로 날을 넘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찰은 7일로 날짜가 바뀌기 직전 법원에 정 교수에 대한 공소장을 접수했다. 사문서 위조 혐의였다.

하지만 9월 9일 인사청문회를 마쳤다는 이유로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임명했다. 그리고 조 전 장관은 취임 이틀 만에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이는 등의 검찰 제도 개선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한국당은 가만있지 않았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9월 16일 청와대 앞에서 조 전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을 벌였다. 다음 날엔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2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2

사모펀드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조 전 장관 5촌 조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검찰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조 전 장관은 ‘검사와의 대화’를 이어가며 검찰개혁 밑그림을 착실히 그려냈다.

검찰은 9월 23일 조 전 장관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의 집이 압수수색 대상이 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검찰이 11시간에 걸쳐 압수수색을 하면서 여당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 “해도 너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여당과 진보진영의 열렬한 지지 속에 총장으로 고속 승진했던 윤 총장은 한 순간에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이는 9월 28일 서울 서초동을 가득 메우는 촛불집회로 번졌다. 이들은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를 외치며 검찰의 수사를 규탄했다. 주최 측 추산 200만명이 집결한 엄청난 규모였다.

검찰개혁의 국민적 열망을 확인한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에 지시한다”는 이례적 표현을 동원해 자체 개혁안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보수진영에서도 10월 3일 광화문을 빼곡히 채운 집회로 맞불을 놨다. 이 집회엔 주최 측 추산 300만명이 참여했다. 양 진영의 이 같은 대규모 집회에 국론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정국이 너무나 과열되자 정 교수를 조사하려던 검찰은 고심 끝에 비공개 소환을 선택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국 장관이 전날 사퇴함에 따라 이날 법무부 차관이 나와 증인으로 섰으며 ‘법무부 장관’ 명패가 한쪽으로 치워져 있다.ⓒ천지일보 2019.10.1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국 장관이 전날 사퇴함에 따라 이날 법무부 차관이 나와 증인으로 섰으며 ‘법무부 장관’ 명패가 한쪽으로 치워져 있다.ⓒ천지일보 2019.10.15

그 사이 윤 총장은 특수부를 폐지하고 피의자 공개소환 등을 금지하는 등의 자체개혁안을 내놓았다. 조 전 장관도 대검 건의사항 등을 수용한 검찰개혁안을 10월 8일 발표했다.

이튿날엔 조 전 장관 동생 조권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정 교수 조사에서도 큰 진전이 없어 검찰 수사 동력이 약해지는 게 아니냔 이야기도 돌았다.

10월 12일엔 ‘검찰개혁·조국수호’ 마지막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최후통첩’이라는 표현을 쓰며 강력한 개혁을 촉구했다.

당정청은 13일 특수부 축소와 명칭 변경안을 논의했고, 합의된 사안을 다음 날인 14일 조 전 장관이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검찰개혁을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인 이날 오후 조 전 장관은 사퇴를 발표했다. 취임 35일만의 일이었다. 배우자인 정 교수 등 가족의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큰 이유였다. ‘평생의 소망’이라던 검찰개혁을 직접 지휘하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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