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소·고발 난무하는 정치권, 법치만능주의 바람직한가
[기고] 고소·고발 난무하는 정치권, 법치만능주의 바람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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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외래교수

ⓒ천지일보 2019.10.14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주변 사람 중에 선하고 정직한 품성을 지닌 분들에 대한 칭찬의 말이다.

요즘에야 어디 이런 평을 받는 사람이 있나 싶을 만큼 세상이 각박하고 팍팍해졌다. 아니 오히려 ‘착하면 손해 본다’라는 말이 생활의 진리로 여겨질 만큼 비도덕적 사회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사회학자가 우리 사회를 분석하면서 서구사회는 계약사회에서 신용사회로 이동 중인 반면에 우리 사회는 거꾸로 신용사회에서 계약사회로 이동 중에 있다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이제 이웃에 돈 꾸러 가거나 이웃끼리 낙찰계나 친목계 모임을 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다.

일단 ‘계약’은 자본주의사회 근본 원리로서 그 자체가 일종의 약속이므로 신용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본질에서는 상호 불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성립하는 약속의 규범이다. 이 계약의 규칙이 법규이고 동시에 계약 위반의 제재와 처벌 또한 역시 법규로 완성된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후진적인 사회와 선진적인 사회의 기준을 그 사회 ‘법규’의 발달로 판단한다. 후진사회는 주로 법보다 도덕이나 관습이 사회규범의 주요지위를 차지하며 법 또한 불문율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선진사회는 법의 확립이 강하고 세밀한 영역까지 법규가 잘 정비되어 각종 분쟁과 갈등을 제도적으로 잘 해결해준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가 이익사회이고 갈등사회이다 보니 이해와 갈등의 조정을 법과 제도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경우는 더더욱 공정한 법규에 따라 자신의 이해와 이익을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인간관계의 모든 영역을 법규에만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또한 법과 제도가 공동체 내의 인간관계나 사회정의 그리고 개인의 권리와 이해에 대한 공정성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나? 특히 경제적 영역이 아닌 정치 사회적 영역에서의 법규는 최소한의 규범으로만 작동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정치의 본령은 개인과 집단 간의 상충하는 이해의 충돌을 방지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대화와 협상, 그리고 조정과 절충을 통해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해소하며 각각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정치가 양극단의 갈등과 충돌을 조정하고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조장하고 증폭시키고 있다.

극한 감정대립과 쌍방 간의 막말과 욕설, 노골적인 대중선동, 의회정치의 실종과 거리의 정치 이런 것만이 국민에게 보여지는 우리 정치의 일상적인 모습이 된 지 오래다.

더욱이 국회와 정치권이 앞장서서 대화와 소통을 통한 정치적 해결보다는 고소·고발에만 의존하는 법치만능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경찰, 법조계 등에 따르면 올해 정치권에서 접수된 고소·고발 건 만도 46건이 넘고 특히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고소·고발 건은 지난달에만도 10건 가까이 접수됐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해서도 총 18건의 고소·고발 건이 있었는데 민주당은 세 차례에 걸쳐 한국당 의원들을 무더기로 고발했고, 한국당도 공동폭행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며 맞불을 놓았다. 현재 검찰 수사대에 올려진 여야 국회의원만 98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또한 앞서 4월에는 민주당이 ‘강원 산불 가짜 뉴스’와 관련 김순례 한국당 의원 등 75명을 이해찬 대표 명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국회발 고소·고발이 여야를 막론하고 풍년을 맞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소·고발을 막 던진 정치권이지만 지금까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총 46건 중 고작 1건이 전부이고 대부분 불기소 송치 또는 불기소 처분되었다고 하니 이들의 고소·고발이 정치적 공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난을 면키는 어렵게 됐다.

더욱이 국회의 정쟁을 이렇게 법치에 의존해 시시비비를 논하게 되면 정치의 실종은 물론 법치에 대한 중립성 및 편파성 논란까지 제기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치권 문제는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며 그것이 검찰과 법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 시비를 줄이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 발언이나 행동 등이 명예훼손이나 모욕, 허위사실 공표로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국회에서 자체 징계를 통해 해결할 사항이지 고소·고발에 의존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이는 삼권분립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패스트트랙, 사법 개혁,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등을 사이에 둔 여야 정쟁이 검찰 수사로 옮겨붙고 양측의 격한 충돌이 상대를 겨냥한 무차별 고소·고발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정치권이 스스로 정국 주도권을 검찰에 쥐어 주고 있는 셈은 아닌지 성찰해 볼 때가 되었다.

여야가 검찰의 정치 중립성을 강조하면서도 걸핏하면 검찰에 공을 넘기고 수사 과정에도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꼴불견을 보이면서 정치권이 되레 ‘정치 검찰’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여론의 따끔한 지적을 여야 정치권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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