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우리 아이는 무엇이 될꼬” 조선의 돌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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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곳간 ⓒ천지일보 2019.10.14
문화곳간 ⓒ천지일보 2019.10.14

과거에는 유아 사망률 높아
100일 넘긴 것 축하하는 의미

무병장수 기원하는 돌잔치

일가친척 모여 아이 미래 점쳐

잡귀가 와서 해코지할까봐
손 귀한 집 돌잔치 생략하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태어난 아기에게 특별한 날이 있다. ‘백일잔치’와 ‘돌잔치’다. 부모는 사진을 남겨 아이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 이날은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아이의 건강을 축하해준다. 백일잔치와 돌잔치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데, 역사 속에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백일잔치와 돌잔치

‘백일잔치’란 아기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에 베푸는 잔치다. 백일에는 수수팥떡이나 백설기 등을 돌린다. 그렇다면 왜 백일잔치를 한 것일까. 과거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100일을 못 넘기고 죽는 아기가 많았기에 이를 넘기는 것을 축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가 탈이 많이 나기도 했기에 첫돌까지는 삼신할머니를 찾으며 아이의 건강을 빌었다. 방법은 간단했는데 소반에 깨끗한 정화수를 떠 놓은 후 두 손을 모아 정성껏 빌었다.

또 흰색과 붉은색으로 만든 떡을 상에 차렸다. 색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는데, 흰색은 아기의 순수함을 나타냈다. 붉은색은 악령을 쫓는 역할을 했다.

‘돌잔치’는 태어난 지 1년 됐을 때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로 하는 잔치다. 이날은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이라서 일가친척이 모인다. 돌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특별한 자리가 바로 ‘돌잡이’다. 쌀이나 떡, 붓, 책, 벼루(학문), 가위(바느질 솜씨), 대추(자손 번창), 실 등을 골라잡도록 해 아이의 미래를 점쳤다.

보통 아이가 붓이나 책을 잡으면 학자가 되고, 돈을 잡으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실을 잡으면 장수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어찌됐던 참석하는 모든 이들은 시선은 아이를 향했다. 돌잡이는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9시부터 11시(사시)에 진행됐다. 이 시간은 모든 사물이 활성화되는 역동적인 시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돌을 맞은 아기가 입는 옷은 ‘돌빔’이다. 모자와 옷, 신발 등으로 구성되며 주머니에 오색실을 채워 장수를 빌어줬다.

◆실록 속의 돌잔치

돌잡이는 역사 속에도 기록돼 있다. ‘정조실록(15년 6월 18일자)’에는 원자의 돌에 대해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날은 자전의 탄신일이며 원자의 돌이었다. 집복헌(集福軒)에 갖가지 놀잇감을 담은 소반을 차려놓았다. 원자는 사유화양건(四斿華陽巾)을 쓰고 자주색 비단 겹저고리를 입었는데 앉은 모습이 의젓하였다. 먼저 채색 실을 집고 다음으로는 화살과 악기를 집었다. 곧 각신과 승지들에게 들어와서 보라고 명하였다. (생략)’

기록을 보면 채색 실이나 화살이나 악기를 집도록 한 것이 마치 오늘날 돈이나 연필 등을 잡도록 하는 것과 모습이 비슷하다.

조선시대에 궁궐의 돌잔치는 매우 중요한 날이어서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축제와 같았다. 장수·호위 군사 및 서리·하인, 군졸과 큰 길거리에 사는 백성들에게까지 떡을 내렸다고 한다.

반면 ‘귀한 자손은 돌잔치를 안 한다’라는 말이 있듯,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돌잔치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의 손을 탈 경우 잡귀가 와서 아이를 해코지 하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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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2019-10-14 20:53:02
옛날에는 공기도 좋고 패스트음식도 없어서 비교적 건강했을텐데 어른이 50을 넘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신생아들도 그랬다니 이해가 안되지만 백일은 물론 돌잔치는 대경사였을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