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공직자를 가리켜 공복(公僕)이라고 한다. ‘나라에서 주는 녹을 받는 종’이란 뜻이다. 중국에서는 노복(奴僕) 혹은 복인(僕人)이라  불렀다. 관리들은 백성들 앞에 서는 스스로 ‘민복(民僕)’이라 했다. 

성군이 집권한 시기에는 훌륭한 ‘공복’들이 많이 나왔다. 송나라 초기 범중엄(范仲淹)은 큰 인물로 회자 된다. 황제 앞에서도 올바른 소리를 하여 나라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막았다. 다음

글은 그가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남긴 글이다. ‘천하의 근심에 앞서 걱정하고, 천하의 기쁨은 나중에 기뻐한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

잘되는 일보다는 먼저 나라의 근심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지금도 중국 역사에서 명언으로 평가된다. 주자(朱子)도 범중엄을 ‘최고의 인물’이라고 평했다.

성군 세종대는 임금을 닮은 덕망 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 호인 황희(黃喜), 청렴한 유관(柳寬)도 세종대의 인물이다. 맹사성은 재상의 지위에 있어도 오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 온양에 내려가면 소를 몰고 농사를 지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시골노인들과 친구처럼 어울려 지냈다. 

정조 때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은 맹사성에 비견되는 공복으로 존경 받았던 인물이다. 현군을 보필하여 백성들에게 이로운 많은 제도를 개혁했다. 관직에 있을 때 극간을 많이 해 몇 번 귀양을 가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정조는 큰 인물을 잃었다고 슬퍼했다.

-지난 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그 사람이 어찌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나는 참으로 이 대신과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고 오직 나만 아는 오묘한 관계〔奧契〕가 있었다. 이 대신은 세상에 드문 인물이었다. 그가 하늘에서 받은 인품은 우뚝하게 기력이 있었고, 일을 만나면 바로 나아가 두려워하거나 꺾이지 않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해 선왕(영조)께 인정을 받아 금전과 곡식을 총괄하고 세법을 관장했다. 어서를 다듬고 내의원에서 선왕의 건강을 돌보는 데 정성을 다했다… (하략)… 정조실록-

공복의 최고 ‘덕(德)’은 무엇일까. 바로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는 ‘민본(民本)’ 위민(爲民)일 것이다. 이 말의 출전은 오경의 하나인 서경(書經)이다. ‘사람은 물(物)을 거울삼지 말고 마땅히 백성을 거울삼아야 한다’고 했다. 민본을 주장한 맹자는 ‘백성은 군주보다 더 귀하다(民贵君轻)’고 했다. 또 ‘사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백성’이라고 했다. 천하의 주인은 백성, 즉 국민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혼란한 상황에서 민본이 실종됐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민본은 민의를 경청하고 그 뜻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이다. 바른 소리를 해야 할 국무총리나 집권당 대표는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청와대 비서실도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한다면 쓴 소리를 해야 한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범중엄이나 맹사성, 채제공의 역할을 담담해야 한다.  

공복인 정치인들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산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복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의무 조항이다. 진영 논리에 빠져 정도(正道)를 외면하고 불의 편에 서서 다수의사에 반한 행동을 한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촛불을 들고 공정한 사회, 반칙이 없는 사회를 염원했던 국민들에 대한 화답도 아니다. 

국민을 상전으로 모시는 ‘공복정신’에 투철한 공직자들이 나와야 한다. 대통령부터 이런 확고한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