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기총을 보면 정체성이 의문스럽다. 태생적 한계가 있었지만 표면적으론 복음화 단체를 표방했던 한기총이 이젠 대놓고 대통령 하야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막말이 도를 넘은지는 이미 오래다. 사석에서 하는 막말도 아니고 공식석상에서 종교지도자가 하는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막말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지난 3일에는 황당한 장면도 연출됐다. 광화문 한쪽에서 대통령 하야집회를 하던 전광훈 목사가 참석자들을 향해 갑자기 ‘헌금’을 요구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늘 행사 중 가장 기쁜 시간이 돌아왔다. 헌금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유는 지난 광복절에 비가 많이 와서 (헌금을 못 걷어) 부도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난데없는 헌금 요구에 지나던 시민은 물론, 일부 참석자들은 욕설까지 내뱉으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시민 사이에선 “무슨 헌금이냐”는 외침도 들렸다. 하지만 전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를 계속 이어나갔다. 스태프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행사 관계자는 정사각형 모양의 헌금함을 들고 참석자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녔다. 헌금함에는 ‘본 헌금은 전광훈 목사님의 모든 사역을 위해 드려지며, 헌금의 처분 권한을 전 목사님께 모두 위임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광화문 집회를 주최한 자유한국당도 이후 방송을 통해 거부감을 보였고, 한 시사프로에서는 이런 한기총의 추태를 비난했다.

정교분리를 헌법으로 명시한 나라에서 종교지도자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신을 신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만큼 품격과 위엄을 갖추고, 소속 신도들의 명예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한기총뿐 아니라 수많은 성직자들의 행보로 인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 종교의 현실이다.

宗敎(종교. 으뜸가는 가르침)는 모든 가르침의 정점에 있다. 인간의 철학을 넘어선 경지에 종교가 있기에 예로부터 종교지도자가 사회를 계도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답을 제시해왔다. 하늘과 통하는 종교, 세상을 끌어갈 종교는 되지 못할망정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종교가 단지 한기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더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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