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으로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신중한 정치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대결과 대결, 감정과 감정, 막말과 막말로 치고받는 최근의 난장판 정국에서 몇 안 되는 야권의 중진 의원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동료의원에게 저속한 욕설을 하는가 하면 검찰을 향해서는 수사 외압까지 행사하는 발언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이 됐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여상규 위원장을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고 10일 밝혔다. 법무부와 검찰청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그것도 국정감사 기간에 시민단체로부터 검찰에 고발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우리 정치가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갈 데까지 가고 있다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이어서 참담할 따름이다.

여상규 위원장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여당 의원의 발언에 대해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욕설을 내뱉었다. 심지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었다. 물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우리가 봐왔던 그 여상규 의원의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버린 충격이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더 이상 법사위원장 자격이 없다며 여 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검찰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패스트트랙 사태에 대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상식 밖의 외압을 행사했다는 지적이다. 패스트트랙 사태는 국회법에 따른 입법 절차를 일방적으로 막아서고 폭력사태를 촉발시킨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핵심 대상이다. 물론 여상규 위원장도 검찰의 수사대상이다. 국회법 규정을 보면 그 처벌도 엄중하다. 벌금액이 500만원을 넘으면 내년 총선에도 나갈 수 없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보면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잘 알 것이다. 여상규 위원장도 유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여 위원장은 검찰을 향해 패스트트랙 사태는 ‘정치의 문제’라며 “검찰이 손 댈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실관계조차 왜곡하는 사실상의 ‘외압’에 다름 아니다.

패스트랙 폭력사태는 본질적으로 수사대상이다. 국회법에 처벌조항까지 적시한 것이 그 근거다. 역대 어느 법사위원장이 자신과 소속 정당의 의원들에 대한 검찰수사까지 국정감사 현장에서 수사하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외압을 행사한 적이 있었던가. 명색이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이런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는다. 검찰과 사법부는 패스트랙 폭력사태가 얼마나 엄중한 범죄인지 명명백백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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