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심리투쟁(心理鬪爭)
[고전 속 정치이야기] 심리투쟁(心理鬪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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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쌍방의 격렬한 정치 또는 군사 투쟁을 펼치는 과정에서는 일부러 약한 것처럼 보여 상대를 나의 유리한 곳으로 유인했다가 기발한 한 수로 격파하기도 한다. 북송 진종 시대에 황하 이서의 통치권을 두고 송은 서번(西蕃)과 서하(西夏)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당시 송에는 조위(曹瑋 873~1030)라는 명장이 지금의 감숙성과 영하의 일부인 위주(渭州)에 주둔했다. 위주는 서번과 서하를 통제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1007년, 2월 28일, 진종이 조위를 서상합문사(西上閤門使)로 임명하고, 변경을 잘 지킨 공을 표창했다. 조위는 자주 적을 유인한 후 소멸했다. 어느 날, 소규모 승리를 거두었지만, 적은 이미 먼 곳으로 달아났다는 것을 알았다. 조위는 가축과 물자와 수레를 끌고 돌아왔다. 대오가 무너지자 걱정한 부하가 말했다.

“가축은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버리고 대오를 정돈하는 것이 옳습니다.”

조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서번군은 송군의 대오가 정돈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습격했다. 조위는 유리한 지형까지 이동했다가 대오를 정돈했다. 서번군이 따라오자 사람을 보내 적장에게 말했다.

“멀리서 오느라고 고생했다. 우리도 피로한 적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잠시 휴식했다가 얼마 후에 결전하는 것이 어떤가?”

적장은 피로로 힘들어하다가 휴식명령을 내렸다. 얼마 후 조위가 휴식했을 것이니 싸우자고 통보했다. 조위는 적을 대파한 후 가축을 버리고 개선한 후 부하들에게 설명했다.

“서번군이 피로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일부러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가축을 탐내는 것처럼 욕심을 부렸다. 따라잡으려면 1백리는 더 행진하여 그들의 날카로운 기세와 싸워야하는데 승패는 알 수 없다. 먼 길을 온 적이 일단 휴식을 취하면 다리가 마비될 것이고 사기도 떨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조위가 위주에 주둔했을 때 손님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부하가 다급하게 보고했다. “변경을 지키던 사병 몇 명이 서하로 도망쳤습니다.”

사병들이 도망친 사건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거나, 용맹만 있고 지략이 없는 필부가 들었다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어떻게 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조위는 태연자약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장기를 두었다. 보고하러 온 장교가 다시 한 번 다급하게 상황을 보고하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 던졌다. “소란피우지 마라! 내가 그들을 파견했다.”

조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이 재빨리 서하로 전해졌다. 서하의 군주는 몇 명의 송군이 투항한 것을 보자마자 반드시 송군의 사기와 세력이 손상을 입고 약화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조위가 일부러 그들을 파견했다는 보고를 듣자 거짓 투항했다고 생각하여 항복한 송군을 모두 참수했다. 그들의 머리는 양군의 경계에 걸어두고 자기를 속인 자들을 징계했다고 과시했다. 송군은 이후에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다.

조위는 장군이었지만 정치적 두뇌까지 겸비했다. 그는 정치적 모략과 심리전에 능했으며, 정치투쟁이 군사로 이어진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서번군에게 피로한 것처럼 보였고, 가축을 탐내는 것처럼 보였으며, 틈을 보여주어 적을 유인했다. 적이 추격해오자 잠시 휴식하자고 제안했다가, 제대로 체력과 전투력이 회복하지 않았을 때 적을 공격하여 일거에 대파했다. 사병 몇 명이 서하로 도망치자, 자기가 파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치로 몇 가지 군사적, 심리적 효과를 거두었다. 도망자를 막고, 군심을 안정시켰으며, 적의 도발을 막았다. 심리전이 때로는 물리적 충돌보다 유효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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