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서정시인 서지월 시인(사진=이지영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과거·현재 잇는 문경새재, 심금 울리다
서지월 시인

[천지일보=김지윤, 이지영 기자] “인생을 시(詩)에만 쏟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미사여구를 멋들어지게 쓰기보다 한국의 혼을 글에다 싣고 싶습니다.”

서지월 시인은 확고했다. 자신이 어떠한 시를 써왔고 앞으로도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민족서정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워낙 한반도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지라 한 수의 시를 쓰더라도 민족과 결부시킨다.

서 선생이 민족주의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연유는 평소 위인전을 즐겨 읽고 천자문을 줄줄 읊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반만 년의 한반도 역사를 줄줄 꿸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글 솜씨 또한 뛰어났으니 시인은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MBC라디오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역사와 관련해 쓴 제 글이 채택됐습니다. 그러면서 전업 작가를 꿈꾸게 됐죠.”

중학교 2학년 때 저작한 동시는 곧 다음 해 소년조선일보에 당선됐다. 그러면서 서 선생은 작가에 대한 꿈을 더욱 키워나갔다. 처녀작 ‘꽃잎이여(1985)’로 30세에 느지막하게 등단했다. 작품은 당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KBS와 MBC 뉴스에서 나란히 소개된 출세작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유명 일간지의 인사동정란에도 보도되는 등 문학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저의 대표작은 1986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인 ‘조선의 눈발’입니다. 작품 배경은 경북 북부지방 문경새재입니다. 눈 내리는 설원에 역사를 가미해 썼습니다. 소달구지는 미래로, 청솔가지 지닌 여인은 과거로 향하고 있죠.”

그는 요즘 시문학 경향에 대해 쓴 소리도 아낌없이 쏟아냈다. 특히 한국 혼이 없는 글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미사여구를 늘어트리고 현대적 기법으로 멋들어지게 쓴 작품은 많지만 대부분의 글에는 생명력이 없단다. 현재 문학계에서는 김치와 청국장 된장 같은 구수한 맛 대신 ‘외국 물’을 먹은 글이 활개를 치고 있다.

“문학뿐 아니라 프로이드 등 외국적 기법만 노래하니 글에 혼이 없습니다. 괴테가 인정받는 이유는 독일적인 시를 썼고 그 민족의 혼이 그대로 글에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외국 정서만 받아들이기 급급하죠. 또한 이러한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저라도 한국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죠.”

‘문경 새재에 눈이 내리면/ 청솔가지 꺾어들고 오는/ 하얀 버선코,/ 사슴의 무리가 눈을 뜬다/ 지붕밑 동박새가 살을 부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눈은 내리고/ 누군가 흰 고무신 눈발속을/조심조심/ 미끄러져 가고 있다.’

그러면서 서 선생은 ‘조선의 눈발’과 같은 작품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민족성이 짙고 서사적 작품인지라 자기 자신도 힘에 부친단다. 대신 품격 있는 시를 쓰는 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다.

“조지훈 시인의 ‘향수’처럼 문학이 문학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가곡으로도 재편성되거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대중가요에 묻어나면 좋죠. 수준 높은 시들이 많이 나와 노래로 불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시를 표현하는 무용수도 나올 수 있겠죠. 이제 시는 종합예술입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수준이 높으면서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 곧 품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품격을 지닌 시가 많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려면 노래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게 서 선생의 생각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노래가사를 거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썼습니다. 시에 노래를 입히니 읊조리기도 쉽죠. 시는 대중적이고 쉽지 결코 어려운 문학이 아닙니다.”

그는 민족과 역사 시인답게 만주 땅과 관련된 작품도 여럿 있다. 만주를 다니면서 선진들의 기개를 글로 표현했다. 선조들의 정신과 얼을 표현하는 게 어려울 법도 한 일이지만 마치 자신의 사명인 듯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서 선생의 계획은 한결같다. ‘민족서정시인’으로서 마치 소달구지를 탄 자와 청솔가지를 손에 쥔 여인네를 잇는 문경새재 고개와 같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를 많이 쓰고 싶단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