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결국 지난 12일 자진 사퇴했다. 그가 낙마한 것은 대검차장 퇴임 직후 로펌에서 7개월간 약 7억 원의 보수를 받은 이른바 ‘전관예우 의혹’과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이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정치권에선 감사원의 독립성 훼손을 주로 문제 삼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선 ‘월봉 1억 원’이라는 엄청난 전관예우의 실체에 대한 위화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전관예우가 ‘국민정서법’을 결정적으로 거스른 셈이다.

전관예우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매우 ‘아름다운 용어’다. 전임자를 예우해준다는 것은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일반 회사의 경우 이미 퇴직한 전관을 홀대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요즘 세태에서 전관예우는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이처럼 미풍양속(?)으로 칭송 받아야 할 전관예우의 실체를 냉정하게 벗겨보면 음습한 악취가 진동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전관예우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에도 걸핏하면 전관예우가 시빗거리가 됐었다. 법원이나 검찰청 주변을 취재하면서 전관예우의 일단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판검사로 재직하다 갓 개업한 변호사의 경우 유난히 승소율이 높았다.

의뢰인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하게 마련이어서 판검사 출신 신참 변호사에게는 사건이 쇄도했다. 서울 서초동 일대에선 퇴임한 검찰 간부가 단독 개업을 해 1년에 수십억 원을 쓸어 모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정확한 규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전관예우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의 실체가 일부 드러난 것은 최근 들어서다. 공직자 재산공개와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통해서였다. 2005년 대법관 출신인 이용훈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을 때 전관예우의 엄청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의 재산공개 내역에 따르면 대법관 퇴임 후 5년간 60억 원의 재산이 증식됐다. 이는 매월 1억 원씩 수입을 올린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 대법관으로 지명된 지법 부장판사 출신 박시환 변호사는 퇴임 후 22개월간 19억 원,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은 고검장 퇴임 후 6년간 48억 원을 번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보면 정동기 후보자가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식으로 억울해 할 만하다. 이번에 박한철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검찰 퇴직 후 김앤장에서 4개월간 4억 원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대우를 받은 셈이라할까? 법조계 주변에서는 대형 로펌의 경우 퇴직 당시의 직급 등을 감안해 통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 월 2000만~1억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로펌이 갓 퇴임한 고위직출신 판검사들에게 이처럼 많은 보수를 주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창출해주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재직 때 쌓아놓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상식에 입각해 볼 때 전관예우는 매우 부도덕한 행태다. 특히 신규개업 변호사의 사건을 후배들이 봐주고 이 능력을 감안해 로펌이 특별예우를 해주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행태는 저잣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부도덕한 담합행위다. 더구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법조계에 일종의 ‘공개적 화간(和姦)’을 방불케 하는 전근대적 폐습이 잔존하는 것은 글로벌스탠다드(국제표준)에 비춰볼 때 한심한 일이다.

일본 판검사들은 중도에 퇴직하면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어 퇴직’한 것으로 여겨져 사건 수임이 잘 안 된다. 때문에 잘 퇴직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에서는 유능한 변호사 가운데 법관을 선출하는 구조여서 개업이란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

전관예우라는 게 발호할 여지가 거의 없다. 전관예우 금지는 그간 수차례 추진됐으나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 퇴직 1년 전 근무지 관할 사건 수임 1년 금지’를 골자로 한 변호사법 개정안이 1년째 낮잠 자고 있다. 판검사 출신이 대다수인 법사위가 ‘중이 제머리깍기식’의 입법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민이 나서 강제로 깍아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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