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감사원의 독립성 훼손을 주로 문제 삼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선 ‘월봉 1억 원’이라는 엄청난 전관예우의 실체에 대한 위화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전관예우가 ‘국민정서법’을 결정적으로 거스른 셈이다.
전관예우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매우 ‘아름다운 용어’다. 전임자를 예우해준다는 것은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일반 회사의 경우 이미 퇴직한 전관을 홀대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요즘 세태에서 전관예우는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이처럼 미풍양속(?)으로 칭송 받아야 할 전관예우의 실체를 냉정하게 벗겨보면 음습한 악취가 진동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전관예우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에도 걸핏하면 전관예우가 시빗거리가 됐었다. 법원이나 검찰청 주변을 취재하면서 전관예우의 일단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판검사로 재직하다 갓 개업한 변호사의 경우 유난히 승소율이 높았다.
의뢰인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하게 마련이어서 판검사 출신 신참 변호사에게는 사건이 쇄도했다. 서울 서초동 일대에선 퇴임한 검찰 간부가 단독 개업을 해 1년에 수십억 원을 쓸어 모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정확한 규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전관예우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의 실체가 일부 드러난 것은 최근 들어서다. 공직자 재산공개와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통해서였다. 2005년 대법관 출신인 이용훈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을 때 전관예우의 엄청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의 재산공개 내역에 따르면 대법관 퇴임 후 5년간 60억 원의 재산이 증식됐다. 이는 매월 1억 원씩 수입을 올린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 대법관으로 지명된 지법 부장판사 출신 박시환 변호사는 퇴임 후 22개월간 19억 원,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은 고검장 퇴임 후 6년간 48억 원을 번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보면 정동기 후보자가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식으로 억울해 할 만하다. 이번에 박한철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검찰 퇴직 후 김앤장에서 4개월간 4억 원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대우를 받은 셈이라할까? 법조계 주변에서는 대형 로펌의 경우 퇴직 당시의 직급 등을 감안해 통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 월 2000만~1억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로펌이 갓 퇴임한 고위직출신 판검사들에게 이처럼 많은 보수를 주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창출해주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재직 때 쌓아놓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상식에 입각해 볼 때 전관예우는 매우 부도덕한 행태다. 특히 신규개업 변호사의 사건을 후배들이 봐주고 이 능력을 감안해 로펌이 특별예우를 해주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행태는 저잣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부도덕한 담합행위다. 더구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법조계에 일종의 ‘공개적 화간(和姦)’을 방불케 하는 전근대적 폐습이 잔존하는 것은 글로벌스탠다드(국제표준)에 비춰볼 때 한심한 일이다.
일본 판검사들은 중도에 퇴직하면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어 퇴직’한 것으로 여겨져 사건 수임이 잘 안 된다. 때문에 잘 퇴직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에서는 유능한 변호사 가운데 법관을 선출하는 구조여서 개업이란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
전관예우라는 게 발호할 여지가 거의 없다. 전관예우 금지는 그간 수차례 추진됐으나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 퇴직 1년 전 근무지 관할 사건 수임 1년 금지’를 골자로 한 변호사법 개정안이 1년째 낮잠 자고 있다. 판검사 출신이 대다수인 법사위가 ‘중이 제머리깍기식’의 입법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민이 나서 강제로 깍아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