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세상] 미쳐가는 세상, 상처받은 ‘조커’가 영웅이 되고 있다
[컬처세상] 미쳐가는 세상, 상처받은 ‘조커’가 영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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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기존 영웅들은 사회의 정의를 지키고 불의에 맞서 싸우며 행복한 결말을 선사했다. 그러나 요즘 영웅들은 약하고 얻어터지고 연민의 정을 자극하며 동정심까지 불러 일으킨다.

최근 개봉한 영화 ‘조커’ 속 아서는 미쳐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못가진 자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하고 싶어하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일용직 광대다. 이런 ‘조커’가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영화보다 훨씬 슬픈 이유는 무엇일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주변 상황과 “아서, 넌 웃기지가 않잖아”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갖은 상처를 매일 먹고 사는 그에게 유명 코미디언은 꿈이고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높은 학력, 금수저, 하이클래스하고는 거리가 먼 아서는 타인들에게 그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웃는 미친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사회 속에 또 다른 아서를 쉽게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며 사는 이들은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져 기득권을 빼앗긴 채 소외된 계층에 머무르고 있다. ‘조커’가 지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조커가 처한 상황이나 스타일 면에서 여타 코믹스 원작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아서는 기존 ‘배트맨’ 잭 니콜슨, ‘다크 나이트’ 히스 레저, ‘수어사이드 스쿼드’ 자레드 레토의 조커와는 달리, 처음부터 주인공 배트맨과 강하게 대적하는 광기의 악당이 아닌, 알약에 의존하며 차별화된 세상에 분노하고 자신이 지닌 병과 싸우는 고독하고 약해 빠진 아웃사이더 조커를 매혹적으로 그려냈다.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가 어두운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지만 차갑게 버려지고 타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코너로 내몰리며 악마가 되어가는 캐릭터 변화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했다. 특히 뇌신경 손상으로 인한 발작성 장애로 전혀 웃기지 않는 상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장면은 삶에 웃을 꺼리 조차 없는 그의 삶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자, 어둡고 차가운 사회를 비꼰다.

영화 속에서 아서가 극단 동료에게 권총을 건네받는 장면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와 유사하다. 힘없고 찬밥 신세인 아서에게 총이라는 상징성은 자신에게 상처와 괴롭힘을 선사했던 적대자들과 세상을 향해 심판하겠다는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즉, 아서는 총을 통해 자신이 숨겨왔던 내면의 자아를 끌어올리고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조커’에서는 춤이 자주 등장한다. 현란하고 강한 비트의 춤이 아닌 화장실 안에서, 차위에서, 계단위에서, 집 거실에서 살랑살랑 어두운 음악을 배경으로 총을 들고 춤을 추며 사회 속에서 모든 것을 이미 가진 불특정 다수의 강자들에게 경고한다. 춤은 아서의 변신을 뜻하기도 한다. 처음 총을 건네받았을 때 아파트에서 춤을 추고, 지하철에서 3명의 남자를 죽인 후 그 춤은 보란 듯이 더 능숙해지고 자신의 몸을 맡긴다.

특히 가장 주목해야 될 장면은 바로 고담시 다운타운의 계단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아서의 깊은 내면 속에서 아서를 버리고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조커가 깨어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갈등하는 조커의 깊은 내면을 상징하기 위한 다양한 소재들을 활용했다. 아서가 애용했던 일기장 속에는 “나의 죽음이 의미 있기를 원했고,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이라는 말들이 적혀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함에 지쳐버린 지 오래이며 어린 시절의 숨겨졌던 과거, 믿었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 우상으로 여겼던 코미디언 머레이에 대한 실망 등이 뒤섞이며 그를 악마로 변형시킨다.

현재 관객들은 새로운 조커를 만나 즐거워하고 있다. 이 즐거움은 단순한 재미가 아닌 깊은 공감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양극화 현상, 심각한 빈부 격차, 특히 가지지 못한 자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자들의 몰상식한 행동과 언행이 우리 사회 속에 없는 자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돈으로 신분이 나뉘어지는 세상, 서로에 대한 배려 없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제 2의 조커가 곳곳에 살아 숨쉬는 중이다.

아서가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라고 말하는 대사는 타인들처럼 행복하지 않은 그저 그런 삶인 줄 알고 계속 버텨왔지만, 그 선을 넘어 자신의 삶이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약자들의 힘을 얻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조커로 진화해가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서가 새하얀 옷을 입고 새하얀 병원 복도에서 우스꽝스럽게 도망 다니는 모습을 롱샷으로 담아낸다. 온통 마지막 장면 미장센을 흰색으로 뒤덮고 유머러스하게 포장한 필립스 감독은 코미디언을 꿈꿨던 아서의 슬픈 현실을 뒤로한 채 그가 꿈꾸던 이상은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묘사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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