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잎의 절명시

최춘희(1955 ~  )

세상 헛것에 홀려 먼 데 돌아왔지요
남해 금산 절벽 아래
부르튼 발 내어놓고
앵강만 파도 소리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때늦은 단풍 한 잎으로
눈부시게
눈부시게
불타오르는 엄마
나의 엄마

그 한 잎의 절명시(絶命詩)

[시평]

되돌아보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세상 헛것에 홀려, 이곳저곳을 떠돌다, 멀고도 먼 곳을 떠돌며, 그렇게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그래서 이것도 찝쩍이고, 저것도 찝쩍이다가 어느덧 세월만 흘러, 흘러서 세상의 저만치에 떠밀려와 있음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어쩌면 세상살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남쪽 머나먼 섬 남해, 그것도 섬의 끝자락에 우뚝 선 산 금산(錦山), 우리가 겪었던 그런 생애마냥 가파른 절벽 아래에서, 세상 떠돌다 이내 부르튼 발 잠시 내려놓고 쉬면서,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루다가, 아, 아! 불현 듯 떠오르는 엄마, 엄마.

그렇다. 가장 외롭고 힘든 밤이면,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떠오르는 이름, 엄마. 그 어머니, 우리들 가슴에 묻어있는 한편의 절명시가 아니겠는가. 마치 때늦은 단풍 한 잎 마냥 눈부시게, 눈부시게, 내 안에서 불타오르는 엄마. 삶의 머나먼 길을 돌아, 돌아와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고, 비로소 부르게 되는 이름, 엄마. 이 가을 속 내 가슴 붉게 타오르는 한 잎의 절명시, 엄마.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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