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우리나라가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보안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최근 ‘ITU 통신표준화부문(ITU-T) SG17’ 국제회의에서 SK텔레콤의 ‘양자 난수발생기 보안구조’가 국제표준(X.1702)으로 예비 승인됐다. 이 기술은 세계 최초로 보안 관점에서 양자기술을 적용한 난수 생성 방법이다. 앞으로 회원국의 반대의견이 없을 경우 최종 표준으로 채택된다. 글로벌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기반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보안시스템의 난수는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 슈퍼 컴퓨터에 의해 해킹 당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SK텔레콤의 기술은 양자 기술을 활용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패턴이 없는 순수한 완전 난수를 만드는 방법으로 연산이 빠른 슈퍼컴퓨터라도 암호를 쉽게 풀어낼 수 없다고 한다. 앞으로 5G 네트워크를 기반의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스마트 시티 등의 보안성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ITU-T SG-17의장인 순천향대 염흥열 교수는 “이번 표준은 높은 보안성이 요구되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어 매우 의미가 크다”고 했다. SK텔레콤 박진효 ICT기술센터장은 “이번 표준 승인은 국내 양자기술력이 글로벌 톱 수준임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했다. 국립전파연구원도 “이번의 성과로 ITU-T 내에 한국의 위상을 확인했다”면서 “국내 정보보호의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가 쪼갤 수 있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라는 특성을 이용해 도청 불가능한 암호키를 생성, 송신자와 수신자 양쪽에 나눠주는 통신기술이다. 암호키를 가진 송신자, 수신자만 암호화된 정보를 해독할 수 있어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해 차세대 암호기술로 꼽힌다. 컴퓨터 연산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데 대처하는 기술로 5세대(5G) 이동통신 등 초연결사회를 지킬 핵심 보안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통신사와 중소기업은 빠르게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해외 유력 기업까지 인수하면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SK텔레콤이 인수한 IDQ는 세계 최초로 2002년 양자난수생성칩(QRNG) 상용 제품과 2006년 양자키 분배장치(QKD)를 각각 출시한 양자암호통신의 글로벌 선두다. 우리의 기술은 세계 최고의 유럽과 기술격차는 2년, 일본과는 1년 차이로 근접하며 치열한 기술 경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용화 기술을 확보하고도 기술을 적용해볼 수가 없어 기업이 애를 먹고 있다.

주요국은 정부가 양자관련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소재부품장비의 성능이나 안정성, 국제표준정합성 등을 시험하도록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지원한다. 일본은 2010년 개방형 ‘도쿄 QKD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2015년에는 NEC데이터센터 등의 실증망을 가동했다. 미국과 유럽, 중국, 영국 모두 2010년경 실험실 밖에서 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는 개방형 시험망을 설치했다. 중국과 미국은 일부 구간에 상용망까지 있으나 우리는 테스트베드가 없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반도체 업계에서 기술독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테스트베드’라고 한다. 테스트베드는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혹은 시스템, 설비를 일컫는다.

양자암호통신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구개발(R&D)과 테스트베드 예산을 요구했지만 일부 연구개발(R&D) 예산만 포함되고 테스트베드 예산 60억원은 전액 삭감된 2020년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제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통신 기술과 장비는 상호 호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R&D 못지않게 테스트베드도 절대 필요하다. 정기국회에서 2020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금액은 얼마 되지 않지만 관련 중소기업에는 매우 중요한 테스트베드 예산이 추가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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