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연합회)가 주최해 열린 ‘특성화고 학생, 졸업생들이 고졸 차별 없는 공정한 출발선에 대해 말한다!’ 토론회에서 “우리 사회는 학력을 기준으로 지나치게 계급화 됐다. 중졸, 고졸, 학점은행제 출신, 전문대졸, 대졸 등 학력이 높지 못하면 사회에서 주어지는 발언권도 적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입학과 졸업, 취업에서 차별받고 고졸 출신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계급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고 발전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자세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사회가 학벌이 아니라 자신이 터득한 기술만큼 대우받는 사회가 되면 지금처럼 무분별한 대학진학은 줄어들 것이다. 독일처럼 공부에 소질 있는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고, 기술에 관심 있는 학생은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술을 익히면 서로 비슷한 삶을 살 수 있는 임금체계나 대우가 먼저 마련돼야 하는 것도 우리사회의 과제다.

교사시절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진학지도를 했다.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며 성실하게 생활하는 학생 대부분이 외고나 과학고, 자사고에 진학한다. 경쟁력 있는 특성화고의 경우도 성적이 우수한 진로에 확고한 신념이 있는 아이들이 진학한다. 반면에 공부를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던 아이들은 내신 성적에 맞는 과거 공고, 상고에서 이름만 바꾼 특성화고에 진학한다. 이런 아이들이 모인 특성화고의 교실 붕괴는 심각한 차원을 넘어섰다고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실력을 쌓아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과 특성화고를 졸업해 취업한 아이들이 모두 동일한 대우를 받고 학력에 따른 차이조차 없다면 그게 더 문제다. 심지어 대학에 뜻있는 아이들을 위해 ‘특성화고 전형’을 별도로 만들어 두었다. 어느 국가, 어느 사회라도 다양한 차이에 따른 서열이 있다. 그 서열이 출생에 따른 양반, 상놈을 구별하는 신분제 같은 차별이 아니라면 차이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하나의 원동력이다. 집단농장에서 차이가 없는 동일한 임금을 주면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사회는 학력과 관계없이 남들이 인정하는 우수한 기술을 가지면 얼마든지 대접 받는 사회다. 차이를 철폐하라고 주장하기 전에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시원에 살면서 몇 년간 임용고사 공부해 합격한 정교사가 있는데, 돈까지 벌어가며 경력을 쌓았다고 정교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간제 교사들의 주장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

필자는 40년 전 지금의 마이스터고인 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전국 5개의 국립 기계공고는 중학교 석차 10% 이내의 학생들에게만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이 힘든 아이들이 “자격증을 따서 취업하면 대졸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는 말에 진학했다. 매일 야간 실습을 하며 2년간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땄는데 현장 실습을 다녀온 3학년 선배들의 말은 입학당시 약속과 많이 달랐다. “월급 타서 속옷 한 벌 사고 나니 돈이 하나도 안 남는다. 대졸자는 직책으로 부르지만 고졸자는 김씨, 이씨로 부른다.”고 했다. 차별받는 세상이 싫은 일부 학생은 대학진학을 준비했다. 인문계 학생들이 3년간 배운 공부를 1년 동안 하루에 3시간만 자며 공부를 해 대학에 진학했고 공고졸업자가 아닌 전문직의 삶을 살고 있다.

학력이나 자격증에 따른 차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존재한다. 그게 싫다면 더 노력해 더 나은 학력이나 자격증을 취득하면 된다. 차이가 있음을 뻔히 알면서 노력하지 않고 나중에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평등이 아니다. 비정규직으로 학교에 들어와 무기계약직이 되어 정년이 보장되니 이젠 공무원까지 시켜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회는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가 보장된다. 학창시절 잠을 잔 시간, 공부한 시간, 놀러 다닌 시간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당연하다. 대학 졸업생과 특성화고 졸업생이 업무능력, 외국어능력에서 차이가 없다면 기업이 비싼 연봉을 주며 채용하지 않는다. 세상은 실제로는 공평하지 않다. 과정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집단행동으로 신분 상승하려는 잘못된 문화가 확산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 불평등을 규탄할 시간에 더 노력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이 발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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