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풍속, 이 또한 우리네 모습 (4)
[사진으로 보는 역사] 풍속, 이 또한 우리네 모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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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은영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로 ‘가(枷)’라고 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칼의 무게가 달라졌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9.27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로 ‘가(枷)’라고 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칼의 무게가 달라졌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9.27

가(枷)

조선시대 죄수들에게 사용했던 형구(刑具)로는 신체형을 가할 때 사용하는 형장(刑杖), 고문할 때 사용하는 고문 도구, 죄인의 도주를 막기 위해 채우는 칼과 수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정조 때 형구의 규격과 사용 방법을 명시한 ‘흠휼전칙(欽恤典則)’에는 각각 형벌의 도구로 태(笞)·장(杖), 신장(訊杖), 가(枷), 추(杻), 철색(鐵索, 쇠사슬), 곤장(棍杖) 등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로 ‘가(枷)’라고 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칼의 무게가 달라졌다. 당시 칼은 중죄수(정치범, 흉악범)에게만 채웠으며 그 죄가 더 중한 사람에게는 손까지 채워 움직임을 어렵게 했다. 여성의 경우 사형수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칼을 채우지 않았는데 이는 <경국대전>에 명시돼 있으며, <육전조례>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목에 씌운 칼 안쪽으로 날카로운 칼이 있어 잘못하다가는 상처가 나기 쉬웠다. 여러 명의 죄수들이 나온 사진은 1910년대 활동했던 의병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선 후기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번갈아 치는 곤형의 집행을 위해 만든 나무 형구를 곤장(棍杖)이라고 한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9.27
조선 후기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번갈아 치는 곤형의 집행을 위해 만든 나무 형구를 곤장(棍杖)이라고 한다.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9.27

곤장

조선 후기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번갈아 치는 곤형의 집행을 위해 만든 나무 형구를 곤장(棍杖)이라고 한다. 종류로는 중곤(重棍)·대곤·중곤(中棍)·소곤 및 치도곤(治盜棍)이 있다. 중곤(重棍)은 사죄(死罪)를 범한 자에게만 사용했으며,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이를 제외한 것 중 가장 큰 치도곤은 절도범이나 소나무 벌채범 등에게 사용했다. 각 곤장에는 규격과 규격에 해당하는 곤장의 이름을 새겼다.

곤장을 칠 때에 “매우 치라”는 말을 하는데 맵게 치라는 의미다. 관장(官長)의 “매우 치라”는 소리를 급창(及唱)이 받아 복창하면 집장사령(執杖使令)이 매를 치게 된다. 이때 둘러선 나졸 중 한 사람이 손에 활처럼 생긴 산판(算板)의 나뭇조각을 옮기거나, 하급관속이 종이에 그려 매 맞은 수를 셌다. 혹은 주위에 둘러선 관속들이 한꺼번에 합창을 하며 곤장의 대수를 셌다.


중곤(重棍) 길이 176㎝, 너비 15㎝, 두께 2.4㎝

대곤(大棍) 길이 170㎝, 너비 13㎝, 두께 1.8㎝

중곤(中棍) 길이 163㎝, 너비 12.4㎝, 두께 1.4㎝

소곤(小棍) 길이 154㎝, 너비 12㎝, 두께 1.2㎝

치도곤(治盜棍) 길이 173㎝, 너비 16㎝, 두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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