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 추석 때 문대통령은 이산가족 문제를 끄집어냈다.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도주의적 과제”라면서 “빠른 시일 내 상봉행사도 늘려나가고 상시상봉, 화상상봉, 고향방문, 성묘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산이 70년인데 긴 세월동안 이산가족의 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안 준다는 것은 남쪽 정부든 북쪽 정부든 함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대통령이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분단된 현실에서 그것도 서로 70년씩이나 적대해온 사이인데 남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에 딴지거는 사람이 있고 트집 잡는 당이 있다. 이북은 전적으로 잘못했고 이남은 전적으로 잘했다는 주장이다.

맨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국회의원 하태경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전적으로 북한에 책임이 있는데 문 대통령이 이상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문대통령은 “정말 정상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역사를 왜곡한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사과도 요구했다.

하태경 의원이 말을 하는 건 자유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말이 자신과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과 다른 인물 또는 다른 세력을 논의와 토론의 상대로 보지 않고 ‘정상이 아닌 존재’로 보는 순간 오만과 편견에 빠지고 나만 옳다는 유아독존적 사고만 남는다. 분단 문제가 응축돼 있는 이산가족 문제를 두고 내가 가진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은 이상하다고 말한다면, 남한은 옳고 북한은 틀렸다고 말한다면 문제가 어떻게 풀릴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사고는 의도하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이산가족 문제와 통일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북쪽 정부’라는 표현을 문제 삼고 “귀를 의심케한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북괴’ 또는 ‘북한 괴뢰’라고 말해야 하는가? 한국당 대변인은 남침, 적화통일, 한국전쟁, 미사일 도발, 핵개발 같은 섬뜩한 말들을 소환하여 문대통령의 ‘남북 정권 동시 책임론’을 비판했다. 전형적인 색깔론이다. 건설적인 논의의 주제가 되어야 하고 유리알처럼 다루어야 할 이산가족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꽉 막힌 이산가족 상봉의 물꼬를 트고자 하는 대통령의 말을 냉전적 시각을 퍼트리는 소재로 삼고 있다.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이산가족 상봉이 안 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정권”이라고 했다. 또 “이산가족 문제마저 할 말 못하고 애매한 줄타기를 할 게 아니라 북한에 똑 부러지게 요구하여 문제를 풀라”고 말하고 “북핵 문제도 도무지 난망인데 이산가족 문제도 진전이 없으니 도대체 문 정부는 할 줄 아는 게 무엇인지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이산가족 문제를 두고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북한에 똑바로 요구하는 것’인가? 바른미래당이 합리와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면 문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에 대해 의견은 다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이산가족 문제를 하루 빨리 풀어 달라’고 말하고 ‘우리 당도 이산가족의 상봉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뭐든 하겠다’고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논평의 공통점은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냉전적 사고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전적으로 잘못했고 남한은 전적으로 잘했다는 말을 반복한다면 사실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북한에게 돌리는 냉전적 인식은 이산가족 상봉에도 방해물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의 전 대통령 부시처럼 북한을 ‘악의 축’으로 바라보는 한 냉전적 사고는 계속될 것이고 북한을 계속 적대하거나 적대까지는 아니라도 북한을 우스운 존재로 여기는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남북 정권 간 잇속이 맞아서 추진하는 ‘이벤트식 이산가족 만남’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산가족이 원하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자유’는 확보되지 않는다.

북한을 적으로 바라보는 냉전적 사고는 하루 빨리 극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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