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경인년 섣달 겨울은 한강물이 얼어붙을 만큼 매서운 추위 속에 저물어 갑니다. 소한·대한절기에 동장군이 한껏 그 위세를 떨치네요.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고 시베리아 대륙에서 삭풍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하면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께서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든다고 하시죠. 육신이 노쇠하면 단화(丹火)가 더 이상 몸을 훈훈하게 데워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중고등학생들이 방학을 해서 눈에 잘 띄지 않더군요. 그런데 늦가을부터 겨울방학 전 그리고 꽃샘추위 때 특이한 현상들을 여학생들에게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거의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벌벌 떨면서 통학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허리 아래로는 그 짧은 치마에 그 얇은 스타킹 하나가 전부더군요. 저희 세대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동복·하복에 치마도 있었지만 늦가을부터 이듬해 꽃샘추위 때까지는 긴바지를 입었던 것으로 알아요.

그때만 해도 여학생들은 추울 때 떨기보다 옷을 입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지 무슨 멋을 부린다고 몸을 상해가며 떨고 있지는 않았어요. 교육당국이나 부모들 그리고 학생들 모두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장래 2세를 잉태할 자궁을 가진 학생들이 아랫배를 차갑게 하면 바로 냉병이 걸려요. 냉병에 걸리면 임신이 잘 될 리 없고 임신이 되어도 태아가 건강할 수가 없어요. 여성의 건강은 따뜻한 자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예로부터 이 땅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적응해온 선조들은 참 지혜로웠어요. 우리의 한옥구조를 보면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 것을 알 수 있죠.(초가삼간인 경우는 마을공동의 사랑채를 이용했다고 하네요.)
사랑채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과 창문이 유난히 많은 구조입니다. 추론해 보면 겨울에도 통기가 잘 되는 것을 넘어 서늘할 정도로 시원하게 거처했음을 알 수 있어요. 안채는 겨울엔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온돌방이 쩔쩔 끓도록 불을 지폈어요.

사랑채는 성인남자들이, 안채는 안주인과 성인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기거했어요. 그러면 왜 주거환경을 그렇게 달리 했을까요? 사랑방에서 성인남자들이 시원하게 거처했던 이유는 고환에 있어요.

고환은 남성의 씨를 보관하는 장소 아닙니까? 옛날이나 지금에도 곡식의 씨앗은 건조한 저온에서 보관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남성들은 아랫도리를 지나치게 고온 다습하게 하면 대번에 정력에 이상이 옵니다. 곧 남성은 하체가 시원하고 건조해야 건강합니다.

이와 반대로 자궁을 가진 여성들은 씨앗을 제대로 싹틔우고 길러내려면 자궁이 훈훈하고 습해야합니다. 자연에서 만물이 발육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것에 비추어 보면 요즘의 우리들 주거환경은 전혀 이치에 부합하지 않죠.

특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환경이 된 아파트는 어떨까요. 우선 습도 조절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통기성이 확보가 안 되서 습할 땐 무한정 습하고 건조할 때는 한없이 건조해 이른바 몸살 나는 구조요, 답답한 구조입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환경에 길들어진 백성들은 아파트가 편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건강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전통적 주거 형태였던 한옥은 사람이 게으르고 편해져서는 관리가 안 되는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 거주하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구조라 이겁니다. 이제는 과연 아파트란 주거형태가 최선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어찌되었거나 자연이치에 순응하는 삶이 가장 건강한 삶이 아닌가 싶어요.

고환과 자궁을 가진 남성과 여성은 평상시 의복이나 주거환경도 그 이치에 맞게 해주어야 건강합니다. 그 이치를 무시하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니 남성은 고환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고 여성은 자궁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이젠 뒤돌아 볼 때가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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