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사전적 의미는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이다. 그 말에 시기를 붙인 ‘질풍노도의 시기’는 청소년기의 감정생활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청소년은 성인도, 어린이도 아닌 주변인으로 여겨져 사회생활의 여러 면에서 좌절이 잠재되면서 불만이 쌓이는 까닭으로 극단적인 사고로 감정 이입될 소지가 크다. 정서적으로도 동요가 심하므로 질풍노도의 시기로 곧잘 비유돼온바, 그에서 연유된 ‘질풍노도의 시대’는 어느덧 현대생활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사회 어느 계층에서도 좌절과 불만이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현실이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다. 이 말은 곧 정국이 안정화돼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정치문제로 귀결된다. 사회변화나 여론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치권에서 발단된 어느 한 특정 사안이 언론에서 집중 보도되고 시민단체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여론화된다. 그 사안의 옳고 그름에 대한 식자층인 대학교수들이 판단하게 되고 더하여 젊은 대학생들의 현실 참여로 진전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지금의 ‘조국사태’가 바로 그렇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의혹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조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증언한 말들이 앞뒤가 틀리거나 사실과 다른 말들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새어나온다. 그 의혹에 대해서는 기소된 조 장관의 배우자 재판과정을 통해 석명되겠지만 문제는 조 장관이 과거 교수시절과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 했던 말과 행동들이 달라서 젊은 대학생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와 공정, 공평한 기회를 외쳤던 내력과 솔선수범하지 않은 사회지도층의 독선에 대해 대못을 박았던 독설과는 달리 자신과 가족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으니 소위 내로남불의 변형격 ‘조로남불’이라는 신유행어까지 등장하게 됐다.

갈수록 민심이 이반되고 있다. 조국사태를 야기 시킨 정부·여당의 독선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 소속 전·현직 대학교수 3396명이 지난 1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민의에 어긋나게 조 장관을 임명함으로써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사회정의와 윤리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회 정의와 윤리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교모에서 시국선언문이 발표된 날 오후에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에서 ‘조 장관 사퇴’ 촛불집회를 열고, 조 장관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특히 조국 장관 딸과 관련된 입학 특혜, 장학금 특혜 등 각종 비리에 대해 허탈해하면서, 사회정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으니 젊은 대학생들이 정치성향과 이념과는 관계없이 정부·여당의 독선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여론에서 조국 임명이 잘못됐다는 것이 확인됐고, 교수들과 대학생들이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사회가 이토록 떠들썩하고 식자층들이 대통령의 결정에 반박하는 이 지경까지 왔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 전에 ‘임명 관련 메시지’와 ‘임명철회’ 건을 동시에 검토했다는데, 임명 건으로 기울어졌을까. 여기에는 민심에 반하는 여당의 판단 오류와 청와대의 독선이 함께 하지 않았나 많은 국민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조국 장관 내정 후부터 그와 가족과 관련해 온갖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고, 일부는 범죄혐의가 짙어져 검찰에서 기소까지 한 내용인데. 당사자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을까. 더욱이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 때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에 ‘문제들이 많다’는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말이다.

검찰로부터 조 장관 가족과 관련된 혐의점이 ‘가볍지 않다’는 점을 전달받은 청와대에서는 이를 무시했다. 교수 재직 시에 또 청와대 민정수석이 돼서도 ‘검찰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던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오면 검찰 조직에 위해가 될까봐 대통령이 임명을 검찰에서 반대하는 것으로 안이하게 인식한 것이다. 그 점은 민주당도 한몫을 했다. 한국당 등 야당에서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 ‘민란수준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민주당은 대통령에게 임명을 건의했고 끝내 당시의 국민여론에서 임명 찬성보다 많은 반대 의견을 묵살한 것이다.

그 결과로 지금 우리사회는 조국 장관 임명에 따른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에서는 대통령 권한이니만큼 잠시 시류를 타다가 잠잠해지겠지 판단했을지 몰라도 임명 후에도 국민여론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교수들과 대학생들이 ‘조국 사퇴’ 촛불을 들고 나섰는데,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민심을 가래로도 못 막을 양상을 좌초한 정권에 대해 성난 민심들이 질풍노도로 몰려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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