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옛 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하였다. 지금 주왕은 오직 한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서경』)

BC 1046년, 주나라 제후 무왕은 목야(牧野)에서 은나라 폭군 주왕과의 결전을 앞두고 군사들에게 이처럼 훈시했다.

무왕의 연설은 은유적이다. 수탉만이 새벽에 운다. 새벽에 암탉이 우는 것은 자연법칙에 반한다. 그런데 은나라는 달기(妲己)가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망조(亡兆)이다.

원래 은나라 주왕은 자질이 뛰어났다. 말솜씨가 뛰어나고 행동도 민첩했다. 체력도 좋아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을 정도였다.

어느 날 주왕이 유소를 정벌했을 때 유소는 주왕에게 달기를 바쳤다. 주왕은 달기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이후 주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달기와 쾌락에 빠졌다. 달기는 주왕을 사로잡기 위해 복숭아꽃 꽃잎을 짜서 만든 ‘연지’를 뺨에 발랐고, 그녀 방에는 음란한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주왕은 녹대(鹿臺)라는 누각을 만들어 재물을 가득 쌓았다. 별궁 정원 앞 연못에는 술을 가득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즐비하게 늘어세운 뒤 그 사이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젊은 남녀를 뛰놀게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향락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졌다.

달기는 인사에도 관여했다. 주왕 주변엔 달기의 마음에 드는 간신들로 가득 찼고, 미자·기자·비간 같은 충신들은 내쳐졌다. 미자는 나라를 떠났고, 기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비간은 죽임을 당했다.

주왕의 숙부인 비간은 사흘 동안이나 주왕에게 간언하였는데 주왕은 “옛 성현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네 심장에는 과연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며 비간의 심장을 꺼내보았다. 『열녀전』에는 ‘이 일 또한 달기를 기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고 적혀있다. 아울러 주왕은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실시했다. 이 형벌은 이글이글 숯불이 타오르는 구덩이 위에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즐비하게 얹은 다음, 그 위를 맨발로 걷게 하여 건너가게 한 처형 방법이었다.

마침내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폭군 주왕을 징벌했다. 주나라 군사는 4만 5천명, 은나라는 70만명이었다. 은나라가 훨씬 우세했지만 군사들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은나라 군사들은 무기를 거꾸로 들고 투항했다. 이러자 주왕은 녹대의 ‘선실(宣室)’에 불을 놓아 스스로 불타 죽었고, 달기는 목을 매어 자결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 역시 절세미인 포사(褒娑) 때문에 망했다. 유왕은 포국(褒國) 토벌 때 바쳐진 포사에 빠졌다. 그런데 포사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어느 날 실수로 봉화가 피워 올랐다.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허둥대며 달려왔다. 이를 본 포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유왕은 포사가 웃자 흡족했다. 이후 유왕은 툭하면 봉화를 피웠고, 제후들이 올 때 마다 포사는 웃었다. 그런데 정작 견융이 주를 침입하자 유왕은 급히 봉화를 올렸지만 제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왕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자주 외친 양치기 소년이 된 꼴이다. 결국 유왕은 살해당했고, 포사는 끌려갔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달기와 포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 사람에 빠지면 나라 일은 뒷전이 된다. 노골적으로 편애하면 나라까지 망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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