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대구=송해인 기자]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천지일보 2019.9.19
[천지일보 대구=송해인 기자]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천지일보 2019.9.19

유학자 김굉필 기린 곳

국내 5대서원 중 하나

조선 서원 건축의 백미

[천지일보 대구=송해인 기자] ‘공자의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도동(道東)서원’.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한 이 서원은 소수서원·병산서원·도산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자 지난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중 하나다.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 한훤당 김굉필(寒喧堂 金宏弼, 1454~1504)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워졌다. 선조가 즉위한 해인 1568년 지방유림들이 현풍 비슬산 동쪽 기슭에 세워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 이름 지었으며 5년 뒤인 선조6년(1573)에 사액됐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선조37년(1604)에 지방의 사림들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짓고 보로동서원(甫勞洞書院)이라 불렀으며 광해군2년(1610)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사액하고 마을 이름도 도동리라 고쳐 불렀다. 도동서원은 고종2년(1865)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전국 650개 서원 중 철폐되지 않은 47개 중요서원의 하나다.

김굉필은 퇴계 이황이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 칭송했던 인물로서 연산군4년(1498)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문제가 돼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연산군10년(1504) 갑자사화에 다시 연루돼 사약을 받게 된다. 김굉필은 조광조의 스승이자 남효온의 친구이기도 하다. 또한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이라 불린다.

도동서원의 강당·사당, 담장은 1963년 보물 제350호로 지정됐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88호)로 지정돼 있다.

서원 앞에는 김굉필나무라 불리는 수령이 약 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 선생이 도동서원 중건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진다. 김굉필나무를 지나면 서원의 첫 건물인 수월루(水月樓)가 눈에 들어온다. 수월루는 서원의 정문 격으로 유생들은 이곳 누각에 올라 바로 앞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잠시 학문의 고단함을 풀며 마음의 여유를 찾곤 했을 것이다.

수월루를 거치면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고 주인을 부른다는 환주문(喚主門)을 지나면 바로 강학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중정당(中正堂). 서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강당이다. 중정당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온돌방과 대청이 함께 갖춰진 강학 공간이다. 6개의 민흘림기둥 윗 부분에는 흰색 한지가 둘러져 있는데 바로 동방오현의 으뜸인 김굉필을 의미하는 상지(上紙)다. 귀하고 위대한 분을 모신 서원을 뜻하는 것으로 전국 서원 가운데 유일하다.

중정당 좌측에는 거인재(居仁齋, 상급생 기숙공간), 우측에는 거의재(居義齋, 하급생 기숙공간)가 배치돼 있으며 중정당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들이 장식돼 있다. 용머리 조각은 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의 범람을 막는 것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정당 기단은 4각, 6각, 12각의 돌을 맞춰 쌓았는데 전국의 김굉필 선생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돌을 보내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퍼즐처럼 짜 맞춰진 덕분에 견고함 또한 갖추고 있다.

중정당 뒤편 계단을 오르면 3개의 문으로 이뤄진 사당이 나온다. 바로 김굉필 선생의 위패와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제향공간이다.

도동서원은 수월루로부터 환주문, 중정당, 사당을 일직선상에 두어 앞에는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영역, 뒤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형식이다. 또한 암키와와 수막새, 그리고 흙을 이용해 쌓은 담장은 음양의 조화, 검소함과 단아함,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도동서원의 전체적인 건축구성과 배치형식은 조선시대 서원건축으로서 가장 규범적이고 전형적이며 건축물들의 건축적 완성도와 공간구성 및 서원을 둘러싼 담과 석물(石物)들도 그 기법이 우수해 조선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는 평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