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n] ‘화성 사건’ 전말… 국내 최초의 ‘연쇄살인’
[이슈in] ‘화성 사건’ 전말… 국내 최초의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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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불특정 여성 10명 연쇄 살해

경찰, 연인원 205만명 동원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 기록’

수사 대상자만 ‘2만 1280명’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1980년대 대한민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DNA가 분석돼 특정된 가운데 해당 사건의 전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 군 유괴사건’ 등과 함께 국내 3대 미제사건으로 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당시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차례로 살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으로, 지금껏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해결 살인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1986년 9월 19일 경기도 화성 태안읍 안녕리(지금의 안녕동)에서 71세 여성 노인의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부터다. 이후 1991년 4월 3일까지 화성시 태안을 비롯해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3∼69세의 불특정 여성 9명이 차례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범행에는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이용됐다. 도구를 사용한 살해가 7건, 손이나 몸을 사용해 숨을 쉬지 못하게 해 살해한 사건이 2건이었다. 범인은 주로 버스정류장에서 귀가하는 여성의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있다가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주변이 논밭이라 야간엔 인적이 드물었던 점을 범인이 이용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처음 이 사건을 접수했을 당시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건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고,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잇따라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경찰은 연쇄살인사건일 것으로 추정, 범인이 잡히지 않은 가운데 국민들은 충격과 공포 속에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경찰력을 총동원했다.

지난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드러났다.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A(50대) 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출처: 연합뉴스)
지난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드러났다.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A(50대) 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출처: 연합뉴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만 연인원 205만여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를 기록했다. 수사 대상자는 2만 1280명이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이뤄진 지문대조는 4만 116명에 달했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피해를 가까스로 면한 여성과 용의자를 태운 버스운전사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이 20대 중반의 키 165∼170㎝,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으로 특정했다. 하지만 3000여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건의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이로인해 경찰은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의 범인에 의한 개별사건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또한 7, 9, 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불상사가 발생하면서 ‘화성괴담’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유일하게 해결된 8차 사건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범인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것이 증거로 채택돼 범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됐으나, 다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사건들은 여전히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경찰은 2006년 4월 2일 마지막 10차 사건(1991년 4월 3일 발생)의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된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면서 보관된 증거를 분석하는 등 수사를 계속해왔다.

한편 이 사건은 공연·영화의 소재로 사용돼 1996년 ‘날 보러 와요’라는 연극이 상연됐으며,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영화가 개봉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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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나 2019-09-19 20:40:58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더 유명해진 사건이지만 진짜 미치도록 잡고싶고 알고싶은 범인이다, 지금 용의자 잡았다고 뉴스에 난리던데 혈액형 논란이 있더라.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만 아니길 빌어본다

이승연 2019-09-19 14:10:53
진범 확인되면 얼굴 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