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祖國)을 언제 떠났노/ 파초(芭蕉)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鄕愁)/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김동명 시인이 1938년에 쓴 ‘파초’라 시의 첫 부문이다. 시인이 일제 암흑기의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쓴 이 시는 시제인 파초의 조국(원산지)은 열하의 나라 남국이지만 그 곳을 떠나 먼 나라에 와서 고국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나타내듯 쓸쓸한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가 워낙 유명해진 까닭으로 조국이라고 하면 ‘파초’를 떠올리고 그에 연상해 조국(祖國)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그려지게 한다.

우리사회는 ‘조국’ 이야기로 뒤숭숭하다. 김동명의 시 ‘파초’에서 나오는 위대하고 그리울사, 조국이 아니라 온갖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고 ‘조로남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권력파워가 센 조국 법무부 장관 이야기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는 갈등으로 얼룩진 진보와 보수 양대 이념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양상이 다르다.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조국(曺國)이 각료로 지명된 순간부터 우리 국가·사회에서는 그에 대한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즉 조국과 반(反)조국이 있을 뿐 다른 이야기들은 쏙 들어가고 말았다.

민족명절인 추석 밥상에서도 조국 이야기로 국론이 둘로 가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터에, 추석이 지나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들어왔어도 조국 사태로 한 발짝도 진전이 없다.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이 합의한 정기국회 의사진행조차 조국을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야당 원내대표들의 의견에 막혀 좌초가 된 마당에 급기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더 이상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그러면서 조 장관에게도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내려와서 검찰의 수사를 받으라!”고 외치면서 삭발식까지 했다. 제1야당 대표의 항의 삭발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바, 그만큼 문제가 많은 조국 법무장관 임명은 ‘헌정 유린’임을 제1야당 대표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 장관의 배우자가 기소된 상태에서 5촌 조카가 17일 검찰에 구속됐으니 그 일가를 둘러싼 의혹들이 검찰수사와 재판을 통해 백일하에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조국 장관은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며 연일 지시를 내리고 있으며, 조국의 법무부는 검찰과 암중 혈투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원로와 젊은 대학생들이 조국사퇴를 부르짖고 있는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안개 속 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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