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하회 양반탈과 각시탈. (사진제공: 하회동 탈박물관)


신앙ㆍ주술서 놀이로 자리 잡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오래전 가면에서 비롯된 ‘탈’이란 말은 ‘위장’이나 ‘풍자’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탈을 쓴 서민들은 자신보다 힘이 있는 존재 앞에서 당당했으며, 잘못된 현실을 풍자하기도 했다. 신앙과 주술의 의미도 지닌 탈은 백성에게 ‘나를 대신해 주는 존재’가 됐다.

탈은 한자로 면(面) 면구(面具) 가두(假頭) 가면(假面) 등으로 표기되며, 우리말로는 탈박․탈바가지․광대․초라니라 불리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탈’이라 불리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과 머리 전체를 가리는 ‘가두’ 등으로 구별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가면 중 최초라고 알려진 것은 6세기경 신라시대의 ‘방상씨’로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46년 경주 노서리 호우총 고분에서 출토된 일명 ‘목심칠면’이라고 하는 이 탈은 죽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방상씨로서 장례에 사용됐다.

탈이 예부터 장례ㆍ굿ㆍ놀이 등에 사용됐다는 기원은 고문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문헌비고>에는 “신라의 황창이라는 7세 소년이 백제왕 앞에서 검무를 추다가 백제왕을 찔러 죽여 처형 당했는데, 이를 슬퍼한 신라인들이 황창의 모습을 본떠 탈을 만들고 검무를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도 ‘향약잡영’편을 통해 대면․열전 등 다섯 가지 놀이를 설명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탈을 쓰고 놀이를 하는 사람을 ‘광대’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으며, <어유야담>에는 당시 직업적인 광대가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은 얼굴을 가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재앙이나 병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음식을 잘못 먹어 배가 아플 때는 ‘배탈’이 났다고 하며, 다친 부분이 덧나면 ‘탈났다’고 하는 등 잘못된 일에는 ‘탈났다’고 표현된다.
 

▲ 하회별신굿탈놀이에 등장하는 ‘주지’ 탈. (사진제공: 하회동 탈박물관)

도깨비 같은 탈이 만들어진 것은 재앙이나 병을 가져오는 악신, 역신 등을 쫓을 때에 그보다 더 무섭고 힘이 있는 것을 쓰고 쫓아 버려야 한다는 신앙 때문이다.

‘탈놀이’는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서민의식의 향상과 더불어 신앙적인 측면보다는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의미로 강조되면서 지금의 놀이형태로 전해졌다.

예전에는 탈을 사용한 여러 형태의 의례와 놀이가 남아 있었으나, 현재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탈놀이는 해서탈춤 산대놀이 오광대 야류 서낭신제 탈춤이 남아있다.

해서탈춤은 황해도의 봉산ㆍ강령ㆍ은율 탈춤이며, 산대놀이는 송파 산대놀이와 양주 별산대놀이가 있다. 오광대는 통영ㆍ고성ㆍ가산 오광대 탈춤, 야류는 수영ㆍ동래, 서낭신제 탈놀이는 하회 별신굿탈놀이와 강릉 관노가면극이 있다. 탈만 보더라도, 우리 전통문화 속에는 민족의 삶과 그 상징성이 매우 깊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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