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일명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은 제정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실제 영화 촬영 현장의 실상황은 스태프들에게 고달프기만 하다. 영화인을 포함한 예술인의 임금 체불은 작품이 적자인 원인도 있지만, 고질적인 상습 체불이 허다하다. 영화계를 포함한 예술계에서 이러한 체불 관행은 당연시 되어버렸다.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영화 제작 현장의 임금 체불 신고가 지난해 76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스태프 임금 체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체로 현장에서의 스태프들은 소속되거나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닌 일반적인 프리랜서로 인식되고 있다. 이 상황은 연극계도 마찬가지다.

2004년 이후 영화인 신문고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915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임금 체불 사건은 719건(78.6%)이고 작년까지 확인된 체불 규모는 모두 125억 6천만원이다. 예술인의 처우를 개선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스태프들을 위한 4대 보험이 실현되지 않고 업무를 시작하기 전 일반적인 근로계약서 작성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영화를 포함한 예술계는 표준계약서 도입이 아직 지지부진하다. 가수 이진원이 가난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작가 최고은이 생활고로 아사한 것이 뒤늦게 발견된 것이 계기가 됐지만, 노동법 위반사항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체불액은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영화계와 예술계에 근로하는 스태프들을 위한 좋은 선례를 남겼다. ‘기생충’ 제작사는 스태프들과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주 52시간 근로를 준수하며 영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현재도 많은 영화 스태프들, 연극 스태프들은 표준계약서는 커녕, 임금체불에 시달리며 사실상 1~2개 이상의 알바를 하며 생계를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그냥 마냥 믿고 기다리고 늦게라도 임금이 들어오면 고마울 따름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본업은 배우, 연출·스태프이지만 투잡스, 쓰리잡스로 버티며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작사들이 스태프들과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걸 쓰면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흥행이 개런티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태프들의 계약서까지 작성했다가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갑질의 행태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스태프들은 제작사에게 사용종속 관계 하에서 일하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형식상 도급계약으로 체결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을 해왔다.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니 스태프들은 야근을 포함한 장시간노동을 하거나 임금체불과 같은 부당한 처우가 있어도 소송 외에는 별다른 구제방법이 없었다.

한국 영화계는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갑을 체제를 갖추고 있다. 돈벌기와 관객 모으기에만 급급한 제작사, 투자사들은 계층구조(Hierarchy) 시스템인 상하 수직 구조를 개선하고, 스태프들도 기본권을 찾고 마음놓고 창작에 열중할 수 있는 제작환경과 근로계약을 실천해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들, 영화제작사 스태프들, 저예산 영화감독들은 돈이 지배하는 수익구조 체제 안에서 제작사와 투자사의 눈치를 보며 과연 임금체불과 같은 부당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지, 예술가를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는 지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 스태프들은 더이상 약자의 상황에서 벗어나 소득과 사회보장 측면에서 예술가들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정의를 찾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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