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이유의 만류에도 동탁은 초선을 수레에 태우고 미오 별장을 향해 떠났다. 마중 나온 만조백관들 속에서 여포는 떠나는 초선을 바라보고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때 사도 왕윤이 다가와 여포를 위로하며 자신의 집으로 함께 데리고 갔다. 왕윤은 밀실에서 술상을 차리고 여포의 자초지종을 듣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동탁이 내 딸을 간음하고 장군의 아내를 뺏었으니 참으로 천하의 치소(恥笑)거리가 되고 말았소. 사람들은 동탁을 비웃지 않고 왕윤과 여 장군을 비웃을 테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늙은 나는 무능한 사람이라 족히 말할 것이 없지마는 가석한 일이오. 장군은 천하를 뒤흔드는 개세(蓋世) 영웅으로 이 같은 더러운 욕을 당했으니 내 가슴이 뻐개지도록 아프오.”

왕윤은 더러운 욕을 당했다는 말에 목소리를 더욱 높여 힘을 주었다. 여포는 왕윤의 말을 듣자 노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주먹을 번쩍 들어 책상을 후려쳤다. 왕윤이 급히 사과를 했다.

“늙은 것이 실언을 했으니 장군은 고정하시오.”

“아닙니다. 장인한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늙은 역적 동탁을 죽여서 내 부끄러움을 씻고야 말겠습니다.” 왕윤은 급히 여포의 입을 틀어막았다. “장군은 함부로 말씀을 마시오. 화가 노부한테 미치면 큰일입니다.”

왕윤이 일부러 겁먹은 시늉을 하자 여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사내대장부가 세상에 한 번 태어났다가 어찌 답답하게 남의 밑에서만 살겠소!”

여포는 울화가 치밀어 얼굴빛까지 붉게 변하자 왕윤은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렇지요. 정말 장군의 재기로 말한다면 동 태사의 제재를 받을 분이 아니지요.”

“내가 이 늙은 도적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부자지간이라고 불러왔으니 뒷사람들의 공분이 무서워서 차마 죽이지 못하오.”

여포의 마음이 잠깐 흔들리고 있었다. 왕윤은 여유 있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장군의 성은 여씨요. 태사의 성은 동입니다. 동탁은 장군한테 초선으로 인해 창을 던졌을 때 벌써 부자의 정은 끊어졌습니다.”

“참, 그렇군요. 사도의 말씀이 아니었던들 여포의 생각이 그르칠 뻔 했습니다.”

왕윤은 여포의 마음이 이제 작정된 것을 짐작하고 점잖게 타일렀다. “장군이 만약 한실(漢室)을 붙든다면 청사에 꽃다운 이름을 전해 충신이 되어 유방백세 될 것이요. 만약 계속 동탁을 돕는다면 반신으로서 역사에 몰려서 추한 냄새를 만년까지 풍기는 유치만년이 될 것이요.”

여포는 왕윤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며 대답했다. “저의 뜻은 이미 결단을 했습니다. 사도께서는 의심치 마십시오.”

왕윤은 다시 여포의 마음을 다잡았다.

“경정하신 일은 좋습니다마는 일이 혹 성사가 아니 되면 도리어 큰 화를 부를까 두렵습니다.”

여포는 벌떡 이어났다. 칼을 빼어 팔을 찔렀다. 붉은 피가 쏟아졌다.

“증거를 보여 맹세를 하겠습니다.”

왕윤은 무릎을 꿇어 여포를 향하여 절을 했다.

“한나라 사직이 망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다 장군의 덕 올시다. 절대로 누설을 해서는 안 됩니다. 때가 오면 계책을 알려드리겠소이다.”

“좋습니다.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여포는 개연히 말하고 돌아갔다. 왕윤은 즉시 복야사인 손서와 사례 교위 황완을 청해 상의를 했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왕윤의 말에 손서가 대답했다. “요사이 폐하께서 병환이 나셨다가 평복이 되셨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 하나를 미오로 보내서 의논할 일이 있다고 동탁을 부르게 하고 한편으로는 천자의 밀조를 여포한테 내려서 궐문 안에 무장한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동탁이 들어 갈 때 순식간에 공격을 한다면 가장 좋은 상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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