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2윤창호법’이 시행된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서울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펼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경찰관.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천지일보 DB

“괜찮다는 말, 만취상태 무의식적 대답임을 알았을 것”

법원, 1심서 취객 유족에게 9000만원 배상 판결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취객이 쓰려져 있다는 신고에 경찰이 출동했지만 “괜찮다”는 취객의 말에 어떤 조치 없이 돌아갔다 취객이 사망했다면, 경찰에도 책임이 일부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9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강원도 횡성경찰서 경찰관들은 지난해 3월 22일 밤 A씨가 술에 취해 쓰려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첫 번째 출동에서 건물 화장실에 쓰려져 있던 A씨를 발견, 데리고 나왔지만 구체적 주소를 듣지 못해 귀가하라는 말만 남긴 채 돌아갔다.

그러나 만취 상태의 A씨는 곧장 귀가하지 못했고, 건물 ATM 출입문 옆에 주저앉아 있다는 신고가 재차 접수됐다. 경찰관들은 다시 현장에 갔지만, 이번엔 순찰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만 내려 A씨에게 “괜찮아요?”라고 물어봤다. 이번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되돌아갔다.

결국 A씨는 다음 날 아침 건물 계단 아래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유족들은 경찰이 보호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은 두 차례나 신고가 들어갈 정도로 술에 만취해 정상적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A씨의 건강 상태와 주변 상황을 살핀 후 경찰서에 데려가는 등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며 “3월 하순에 강원도 지역의 야간 기온이 상당히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만취한 A씨의 힘으로 방지하기 어려운 생명·신체의 중대한 위험이 존재했고, 경찰관들도 그 위험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는 경찰관들이 두 번째 출동했을 때 괜챦냐는 물음에 A씨가 그렇다고 대답했기에 보호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사망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 등을 고려하면 괜찮다는 취지로 대답했어도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만취해 무의식적으로 나온 대답임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관들은 그런데도 만연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절한 조치를 할 의무를 게을리 해 사고를 발생케 한 과실이 있고, 이 과실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주량을 초과해 술을 마신 과실이 있다는 점을 참작해 국가의 책임은 30%가 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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