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추석 연휴에도… 탑골공원 찾는 노인들의 사정
[르포] 추석 연휴에도… 탑골공원 찾는 노인들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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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 팔각정에서 한 노인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4
추석 연휴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 팔각정에서 한 노인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4

추석 연휴 막바지 탑골공원 가보니

대다수 노인, 가족과 연락두절

전화 한통 없어 ‘나홀로’ 보내

“명절 음식? 복지관 도시락 전부”

자식 눈치 싫어 나오는 노인들도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자녀라곤 둘 있는데 전화 한통 없어. 오히려 (나를)못 오게 하지. 왜 못 오게 하냐고? 내가 가면 돈만 나간다고… 솔직히 살면서 슬플 일이 거의 없는데 있다면 추석날, 설날 같은 날이지.”

짧은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선모(81, 여)씨는 이같이 말하며 텅 빈 하늘을 바라봤다. 남편을 암으로 일찍 떠나보내 혼자 살고 있다는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주름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선씨는 집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기 싫어 성남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올해 여든이 넘은 선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자녀가 둘 있지만 한명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나머지 한명은 3년 전 크게 다투고 연락이 끊겼다.

명절 음식은 챙겨 먹었는지 묻는 기자의 물음에 선씨는 “복지관에서 도시락 등을 챙겨줬지만 입이 써서 그냥 물에다 말아 한술 뜨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평소에도 탑골공원과 종로공원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했다. 동료 노인들이 있기에 말동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씨는 “추석 같은 날 혼자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에 더 비참해진다”며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해질 무렵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인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천지일보 2019.9.14
추석 연휴인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천지일보 2019.9.14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연휴,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외로움은 배가 된다. 그래서인지 이날 탑골공원엔 외로움을 달래러 나온 노인들이 꽤 많았다. 한쪽에선 5~10명의 노인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는가 하면 바위나 벤치에 홀로 멍하니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도 보였다.

천지일보가 이날 오후 2시쯤 공원에서 세어 본 노인은 50여명에 가까웠다. 대다수는 70세를 넘긴 남성이었다.

공원을 방문한 노인들의 사연은 같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일부 노인은 인터뷰를 청하는 기자에게 “추석 때 혼자 궁상떤다고 소문낼 일 있냐”면서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특히 가까운 곳에서 온 노인보다 인천, 성남, 천안 등 2시간가량 걸리는 먼 곳에서 온 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천안시 신안동에 살고 있는 김기택(가명, 68, 남)씨는 추석을 혼자 보내다 너무 답답해서 공원을 찾았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그에게 사연을 묻자 “당뇨합병증으로 몇 달 전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거 문화재 관리 일을 했다는 김씨는 “때를 놓쳐 결혼을 하지 못해 자식이 없다”며 “누나와 형이 있지만, 거리도 멀고 불러주지 않아 명절에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추석 연휴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에서 노인들이 모여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4

추석 연휴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에서 노인들이 모여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4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다는 마영환(79, 남)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고 했다. 그는 “아들과 며느리가 추석 당일날 와서 차례를 지냈다”면서 “아들네는 오늘 아침 여행 계획 때문에 해외로 출국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이 있어도 외톨이 같은 심정은 마찬가지”라며 “이곳에 와서 친구들 만나고 함께 있는 게 남은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공원에 오는 모든 노인들이 혼자 살거나 형편이 어려운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자식의 눈치가 보여 이곳을 찾는다는 노인도 있었다.

한태식(가명, 77, 남)씨는 “자식이 있어도 요즘 노인들 사정은 다 똑같을 것”이라며 “가만히 앉아서 밥 때나 기다리면 눈치가 보여 못 산다”고 인상을 찌뿌렸다. 그러면서 “추석이나 명절이면 오히려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듣는다”며 “그게 견디기 힘들어 밖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4
추석 연휴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4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현재 147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노인 5명 중 1명인 셈이다. 앞으로 홀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더 증가할 전망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되는데, 초고령 사회가 예상보다 더 빨리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고독사 등 노인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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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2019-09-14 19:08:02
걱정이네요. 초고령화 사회라.. 자식들이 잔소리한다고 했는데 자식이면 무조건 받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그저 홀로 늙어가는 부모를 보니 속상해서 자신에게 하는 잔소리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