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대학로가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대학로가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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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1980년대 후반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앞 대로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이곳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만들겠다며 대학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주말에는 자동차 통행을 막고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마음대로 놀도록 했다. 평소 자동차가 달리던 넓은 도로가 사람들 차지가 되었다. 교련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도로 위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기타를 치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촌스러운 모습으로 시작된 대학로는 과연 문화와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젊은 층은 청춘의 달콤한 낭만으로, 나이가 든 사람들은 풋풋한 시절의 추억을 좇아 대학로를 찾았다. 

평소 문화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도 대학로에 한 번 갔다 오면 왠지 자신이 문화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 같은 걸 느꼈다. 대학로는 1970년대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관악 캠퍼스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서면서부터 새롭게 변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소극장들이 모여들면서 연극의 메카가 되었다. 이곳에 가면 언제든지 보고 싶은 연극을 볼 수 있었고 골목마다 문화 예술의 공기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로에서 연극이 번성할 때는 연극 하는 사람들 형편도 좋았다. 대박 공연들이 줄줄이 생겨나면서 주머니 두둑해진 연극인들도 많았다. 몇 만, 몇 십만 관객을 동원한 연극도 많았다. 대학로에서 성공한 연극은 전국 순회공연을 돌았고 해외 무대로 나가기도 했다. 연극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방송이나 영화로 진출해 스타가 되기도 했다. 대학로는 연극 사관학교이자 스타 산실이었다. 

대학로에는 거리의 명물도 많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고정적으로 나와 노래와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행인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재주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방송에 소개돼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대학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최근 폐암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알려온 김철민 씨도 대학로에서 거리공연을 펼치며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운 거리의 천사였다. 

2000년대 들어 대학로가 서울에서 두 번째로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다양한 상가 건물이 들어서고 거리가 정비되어 보기에는 좋았지만 정작 연극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건물 임대료가 치솟고 연극무대를 찾지 못하는 연극인들이 늘어났다.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대학로를 떠나 시골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연극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대학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라 부르기가 힘들다. 문화의 향기도 사라졌고 거리의 예술인들도 보기 힘들다.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상가를 새로 얻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중국인이 대부분이다. 이러다가 대학로마저 중국인 차지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대학로가 다시 살아 숨 쉬는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무엇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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