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 광장에서 지하철 시문을 나눠주는 신문 배달부 지승희 씨. 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된 지난달 28일 승희 씨를 만났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주리던 시절 생각하면 힘들 게 뭐 있나”
지금의 넉넉함 돌아보면 늘 감사할 일뿐

서울역 광장서 노숙자와 실랑이 ‘빈번’
5년 차 되니 그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서울역에 지승희(68·사진) 씨가 나타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형광 초록색 점퍼를 입고 매일같이 M사의 지하철 무료 신문을 나눠주고 있는 승희 씨는 서울역 사정을 훤히 꿰뚫는 서울역 광장 전담 신문 배달부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16도까지 떨어지고 전국에 폭설 주의보가 내린 지난 28일. 승희 씨는 눈이 엉겨 붙어 잘 굴러가지 않는 손수레를 끌며 광장 곳곳에 신문을 배치하고 있었다.

혹한의 추위에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그는 “내복에 운동복, 겉바지까지 3겹이나 챙겨 입었다. 행여 미끄러질까 봐 등산화까지 꼼꼼히 챙겼다”고 오히려 기자를 안심시켰다.

승희 씨가 집을 나서는 시각은 새벽 5시 반. 오전 10시까지 200여 부가 넘는 신문을 광장 전체에 깔아야 하는 그는 꼬박 5시간을 새벽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럼에도 승희 씨는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이 일을 5년 동안 해왔다고 했다.

승희 씨는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이렇게 나서서 일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아침밥’으로 꼽았다. 승희 씨는 “아침을 먹지 않고 나서면 속이 떨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밖에 나와 빵이나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간 사단이 난다”고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어 “나이가 들수록 밥을 제때 챙겨먹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면서 “밥을 챙겨먹는 일이야말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 장갑에 목도리, 겹옷으로 꽁꽁 싸매고 신문 배달에 나선 승희 씨가 5년 동안 동행해 온 손수레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런 승희 씨는 일도 야무지게 해낸다. 승희 씨는 건물 안에 들어가 쉬겠다는 요령 한번 부리지 않고 새벽녘부터 5시간 동안 추운 광장에 서서 일했다.

그의 퇴근 시간은 오전 9시. 승희 씨는 퇴근 시간을 무려 1시간이나 늦춘 오전 10시까지 광장에 머물면서 남은 신문을 사람들에 손에 쥐여 줬다.

그는 “광고를 낸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광고를 보길 원할 텐데 2부씩 가져가는 사람을 그냥 둬서야 되겠느냐”며 “보다 많은 사람이 신문을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 남아 신문을 나눠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청객이 있다. 바로 서울역의 터줏대감인 노숙자들.

승희 씨가 배치한 신문이 무료이다 보니 종종 신문 욕심을 내는 노숙자가 많은데, 가끔 노숙자들이 신문을 뭉치 채로 가져가려 들면 승희 씨는 외려 “‘1부씩만 가져가라’고 야무지게 말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되도록 웃으며 얘기해야 해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노숙자들도 좋게 말하면 시비를 걸지 않더라고요.”

그는 “오래 일하다보니 노숙자들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해 신문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노숙자도 사람인데 왜 세상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겠느냐”고 웃음을 터트렸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승희 씨 주변으로 ‘수고하셨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재밌게도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거리의 노숙자들이었다. 승희 씨는 “처음에는 훼방을 놓던 노숙자들도 5년 차가 되니 일을 마치고 갈 때가 되면 인사를 하더라”며 “이때 보람 아닌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이처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데는 ‘건강’이라는 자산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는 승희 씨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적성이나 추위, 주변의 사람들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운 때는 팥죽같이 땀을 흘리고, 겨울에는 허벅지가 터져나가는 일종의 3D업종이라도 그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일한다고 했다.

충남 부여 태생인 승희 씨는 못 먹고 헐벗었던 어린 시절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노랫가락을 뜻도 모르고 흥얼거리던 시절. 6·25 동란에 어른들을 따라 동산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더라는 승희 씨는 그 때 당시 먹을 것이 없어 통밀과 보리 가루를 물에 말아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 때 어찌나 배가 고팠는지 승희 씨는 “따뜻한 밥에 김치 한 점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고 추억에 젖었다.

비록 신문 배달을 하고 사는 삶이지만 승희 씨는 “내가 먹고 싶을 때 사 먹고 넉넉하진 않지만 쌀밥에 김치라도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냐”고 말했다.

밥에 소중함을 아는 승희 씨는 그래서 “아플 때도 밥만은 꼭 챙겨 먹는다”고 했다.

‘워낙 먹성이 좋아 그렇다’고 손사래를 친 승희 씨는 “아파도 먹어야 낫는다는 생각에 누른 밥이라도 끓어 꼭 먹고 일어선다”며 밥이 보약이란 말을 몸소 실천하는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승희 씨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전쟁 속에 그리던 뽀얀 ‘쌀밥’과 알싸한 ‘김치’를 꼽는다. 고향 부여에서 먹던 황새기(황석어) 젓갈로 벌겋게 버무린 김치에 뽀얀 쌀밥을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돌아 밥맛을 잃을 때가 없다고.

오전 10시에 일을 마치고 서울역 대기실에서 1시간가량 인터뷰를 마친 승희 씨는 “오늘 점심은 유독 김치와 밥이 그립다”면서 “열심히 일하고 난 후 밥맛은 그렇게 꿀맛일 수 없다”고 말하며 기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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