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가 끝이 나면서 그동안 힘의 균형이 깨진 듯 제각각의 목소리에 충실했던 시대가 이어져 왔다. 20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개최된 미중정상회담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물꼬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봐진다.

중국의 신(新) 파워로 인해 신 냉전으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양국 정상은 대립과 대결보다 현실과 실리 즉 공존(共存)을 택함으로 다소 미흡하지만 인류공영(人類共榮)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시금석이 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이제 세계는 격랑 속에서 빠져나와 나름의 비전을 품고 밝은 미래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라는 조심스런 진단을 해 본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에 이른 것은, 올해가 지나면 한반도의 남북한 당사국은 물론 주변 열강의 정치적 변화가 또 다른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국주도권을 앞두고 전국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공산이 크며, 북한은 김정은의 후계자 안착과 2012년 강성대국 원년을 성사시키기 위해 예측불허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또한 오바마의 임기가 끝나면서 대선으로 인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고, 중국은 외교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품을 연습을 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후계자로 바통을 준비하며, 당 중앙위와 중앙 군사위에서 부주석과 주석의 수순을 이어가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멀어지고 약해지는 영향력을 만회하고자 안간힘을 쓰게 될 것이며, 결국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은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될 전망이다.

이러한 미래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진행된 미중정상회담은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며, 우리가 갈 길을 가늠하게 했다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즉, 양국 정상은 북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반도의 비핵화에 의식을 같이 했으며, 6자회담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됐다는 사실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가 대결보다 대화를 원한다는 궁극적 염원에 대한 화답이요 인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속내야 어떻든 북한의 대화공세에 힘이 실리게 했고, 우리에겐 6자회담으로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며, 6자회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산임을 알면서도 북측의 제의 즉, 남북 고위급군사회담을 위한 양측 실무회담을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되고 만 것이다.

물론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북측의 답을 받아냄으로써 일정부분 자존심은 지켜내는 모양새를 갖추기는 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의든 타의든 어차피 다가온 화해의 기회를 숙명으로 여기며,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는 데 정부는 국민과 더불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국운융성의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가운데 그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는 두 나라, 200년 짧은 역사지만 합리적인 사고로 온 세계를 지배해 온 미국은 이제 많은 약점이 노출되면서 그 막강했던 영향력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 또한 56개 소수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음으로 인해 언젠가 터질 화약고와 같은 처지며, 사회주의라는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체제 또한 구시대적이며, 광활한 영토로 인한 끊이지 않는 천연재해, 거짓과 왜곡으로 인해 세계로부터 받고 있는 지탄과 불신 등은 장구한 미래를 책임지기에는 또는 글로벌 시대의 주도국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약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미중정상회담의 의미는 미국과 중국의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첨예하게 대립한 한반도 상황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켜 미래의 주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여건을 만들어가라는 천명(天命)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개최될 고위급회담을 통해 ‘평화 무드’라는 결실을 만들어 내고, 그 결실의 여세를 몰아 세계의 중심이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음을 만방에 알려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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