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거나 사회, 문화적으로 변화나 변동이 있을 때 사람들은 주로 ‘요즘 트렌드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트렌드를 굳이 해석하자면 ‘방향, 경향, 동향, 추세, 유행’ 등을 일컫는 말로 독창성이나 저작권을 신경 쓰지 않고 남을 따라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고 있으면 사전적인 해석과는 다르게 독창성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트렌드에 휩쓸리다보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11일 법정스님 입적한 이후 무소유, 이웃종교 간 대화와 화합을 주장했던 스님의 책이 말 그대로 부리나케 팔렸다. 종교 간 갈등이나 종교편향, 종교인들의 부도덕함으로 신뢰도가 떨어져있던 터라 무소유를 몸소 실천한 법정스님에 대한 애도의 물결도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스님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는 출간하지 말아 달라는 뜻을 내비친 터라 스님의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어느새 스님의 책을 구입하는 것이 문화가의 한 동향, 즉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미디어도 법정스님 관련 서적과 이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 연일 보도했고, 한 대형서점의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 대부분이 스님과 관련된 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삶의 지침 같은 이야기가 실린 스님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니 좋을 만도 하지만 이도 잠시, 스님의 책은 어느새 잊히기 시작했다.

외려 스님의 책이 대량으로 폐기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하니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일각에선 빨리 끓고 빨리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냄비근성이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데 한몫했을 수도 있겠지만 유행에 너무 민감하다보니 트렌드보다는 마이크로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두 달 사이에 반짝 유행하다 마는 마이크로트렌드. 결코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트렌드라지만 문화 선진국, 문화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다 지속적이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트렌드를 창출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문화의 좋은 기능이 시간이 지나면서 꾸준히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그 경향을 따라가게 되면 결국 한때 유행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culture)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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