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가 3년 전 연수원 철거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추협은 현재 ‘일기 박물관’ 건립을 목표로 LH공사를 상대로 3400억원 소송을 진행 중이다. ⓒ천지일보 2019.9.10
10일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가 3년 전 연수원 철거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추협은 현재 ‘일기 박물관’ 건립을 목표로 LH공사를 상대로 3400억원 소송을 진행 중이다. ⓒ천지일보 2019.9.10

LH측, 3년전 연수원 강제철거

“2년 유예 묵살, 하룻 새 철거”

“어른들 잘못 용서받고자 투쟁”

“일기박물관 건립, 사과” 요구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100만명 아이들의 일기장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던 차에 LH로부터 강제철거를 당했습니다.”

9일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고진광 대표가 3년 전 연수원 철거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고 대표는 세종시 금남면 사랑의일기연수원 터 콘테이너 박스에서 LH를 상대로 3년 째 투쟁중이다. 2016년 연수원 철거 직전 인추협은 연수원에 보관 중인 일기장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이주를 요구하는 LH 측에 2년의 말미를 요구했지만 묵살됐고, 그해 9월 28일 연수원은 강제철거 됐다.

연수원 철거 2개월 후인 2016년 12월초 현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연수원 터에서 매몰된 일기장을 발굴하고 있다.
연수원 철거 2개월 후인 2016년 12월초 현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연수원 터에서 매몰된 일기장을 발굴하고 있다.

◆“기록유산 가치 몰라 빚어진 참사”

사랑의일기연수원은 세계 유일의 일기박물관을 목표로 2003년 옛 금석초등학교(세종시 금남면 금병로 670 집현리)에 세워졌다. 충남 연기군 차원에서 유치했으며, 인추협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운영했다. 연수원에는 100만여점의 어린이 일기를 비롯해 1만여점의 가족작품과 연기군민의 생활도구들이 보관돼 있었다. 세종시민기록물 3000여점이 보관된 세종시민기록관도 있었다.

2016년 9월 28일 사랑의일기연수원에 이른 아침부터 법원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법원이 통고한 연수원 이주 마감일은 2018년 9월 5일이었기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집행관들은 박스에 연수원에 있던 각종 일기와 세종시민기록물들을 쓰레기처럼 담았다. 무엇을 어디에 담았는지 집행목록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수원을 운영해온 고 대표가 저항도 해보고 자해소동도 벌여봤지만 대기하던 경찰에 의해 모두 저지당했다. 그렇게 삽시간에 사랑의일기연수원이 13년간 지켜온 기록물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시 LH 관계자는 “현장에 방문해 구두 상으로 조만간 철거한다고 통보하고, 통지서를 부착한 날로부터 14일 후(2016년 9월 28일)에 집행한 것”이라며 강제집행 절차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진광 대표는 “이 모든 사태가 기록유물의 가치를 모르는 무지가 부른 참사”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옥중일기도 유실

사랑의일기연수원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의 일기를 비롯해 미당 서정주 선생의 육필 원고 등 기록유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상당수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세종시가 신행정수도로 지정되고, 다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본격화되자 등기권자인 충남교육청이 연수원 부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박상우)에 매각처분했다.

매매 과정에서 거주자 3명과 공익시설인 연수원에 대한 보상계획은 제외됐다. 연수원 측은 LH공사와 보상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진행했으나 2016년 7월 패소했고, 같은 해 9월 28일 LH공사는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LH는 5억원의 부당이득금까지 내라면서 연수원 운영을 맡았던 인추협을 압박했다.

강제철거 이후 정체 미상의 사람들이 연수원이 가꿔온 은행나무 30주를 밀반출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보관해둔 일부 세종시민투쟁기록물과 어린이 일기장마저 훼손됐다.

◆길고 지리한 나홀로 투쟁 3년

“기록문화 파괴가 얼마나 큰 죄인지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3년간 비폭력정신으로 피눈물 나게 투쟁해왔습니다.”

어느 덧 철거 3년이 된 사랑의일기연수원에는 고진광 대표가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지난해에는 역대급 폭염 속에서 땅속에 묻힌 일기 자료를 발굴하다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인추협은 현재 공룡기업 LH공사를 상대로 3400억원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투쟁 목적은 돈이 아닌 ‘일기 박물관’ 건립이다. LH의 연수원 강제철거로 상처를 입은 국민들에게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일기 박물관을 기존 사랑의일기연수원 터에 지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땅속에 매몰된 사랑의일기연수원 기록물에 대한 공동발굴도 요구하고 있다.

인추협은 이와 별개로 강제집행 집행관 처벌법도 추진할 예정이다. 고진광 대표는 “현재 법원 집행관들이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하는 법이 없어 국민들의 피해가 크다”면서 “전 대법관의 자문을 받아 강제집행 시 빚어지는 집행관들의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2016년 9월 28일 강제철거되고 있는 사랑의일기연수원.
2016년 9월 28일 강제철거되고 있는 사랑의일기연수원.

◆끝없는 응원발길…문대통령도 ‘응원’

3년간 나홀로 투쟁 중에도 인추협은 매년 사랑의일기 대잔치를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행사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 일기와 기록문화 보존에 힘써 온 인추협의 사랑의일기 운동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간 일기를 기증한 어린이를 비롯해 수많은 인사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최근에는 몽고, 캐나다, 중국, 러시아 등 일기를 기증한 외국 어린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런 끊임없는 응원은 폭염과 폭설 속에서도 투쟁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기록은 인생의 지침서이자 나침반입니다. 아이들의 기록은 그들의 역사입니다. 이걸 불법적으로 땅에 묻은 어른들의 잘 못을 용서 받고자 묵묵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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