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고진영과 소렌스탐
[스포츠 속으로] 고진영과 소렌스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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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여름방학 중 짬을 내 읽은 법정 스님의 산문집 ‘텅빈 충만’에 눈에 확 띄는 문장이 있었다. ‘단순이란 단지 단조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질없는 요소를 모조리 생략하고 반드시 필요한 요소만으로 구성된 결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 집약된 모습이다’라는 내용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스포츠 고수들의 ‘심플한 동작’을 생각했다. 농구의 전설 마이클 조던, 당대 최고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등 세계 스포츠의 최고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볼을 다루며 몸을 이용하는 형태는 종목별로 다를 수 있지만 세기적인 선수들은 아주 간결한 동작으로 척척 경기를 풀어나간다. 아마추어들은 세계 최고수들의 동작을 보면 금방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실전에서 이들처럼 하려면 몸이 엇박자가 나고 동작이 더 복잡하게 꼬여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들 플레이는 오랫동안 갈고 닦고 다듬으면서 철저히 기본기를 토대로 가장 필요한 단조로운 모습만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결코 흉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달 30일 여자골프 세계 1위 고진영이 타이거 우즈가 가지고 있던 110홀 연속 노보기 기록을 깨뜨리고 114홀 연속 노보기의 대기록을 새롭게 작성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심플한 동작’을 생각해보게 됐다. 올 시즌 4승을 거두고 6주째 세계 1위를 지키는 고진영은 결코 힘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조용하면서도 은근한 실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힘을 앞세우는 박성현, 레시 톰슨, 코다 자매 등과 달리 기본기에 입각한 간결한 스윙으로 ‘정석 골프’를 보여주는게 그의 전매특허다. 미국의 유명 골프칼럼니스트 론 시락은 2일 미국여자골프투어(LPGA)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고진영을 통해 오랜 전 은퇴한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모습을 본다”며 “매혹적이고 우아한 그녀의 스윙은 균형과 안정감으로 대표되는 소렌스탐과 흡사하다”고 밝혔다. 소렌스탐이 전성기 시절을 누비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직접 그녀의 플레이를 가까이서 보고, 취재를 통해 대면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필자는 고진영에 대한 시락의 평가에 동감을 느낀다. 스윙을 할 때 마치 머리가 들리는 ‘헤드업’을 하는 듯한 소렌스탐은 전체적인 몸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을 발휘하는 게 최고의 강점으로 꼽혔던 선수였다. 그녀의 플레이는 그냥 볼에 툭 갖다 대는 것 같이 보일정도로 간결하지만 오랫동안 숙성되며 농익을대로 익은 신기의 묘수였다.

고진영은 소렌스탐처럼 단순성, 정확성, 정밀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기본적인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발전을 위한 연습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고진영이 소렌스탐을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소렌스탐은 전성기 시절에 경기가 없을 때 호텔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근력강화를 위해 바벨 등을 들고 땀을 흘리곤 했다.

박세리, 박인비에 이어 새롭게 한국여자골프역사를 써나가는 고진영이라는 선수는 이제는 그 자신의 성적을 내는데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LPGA라는 세계여자골프의 바다에서 소렌스탐과 같은 큰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소렌스탐이 메이저대회 10승 포함 LPGA 통산 72승을 달성하면서 기쁨과 환희를 맛보는 한편으로 수많은 패배의 쓰라림을 겪고 대회 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고진영이라는 이름이 앞으로 많은 커리어를 통해 거듭 거듭 새로워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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