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영국 출신 소설가 ‘조지 오웰’하면 먼저 그의 인기작 ‘1984년’이 떠오른다.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초월적 존재인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이끄는 당에 의해 지배되면서 인간성이 말살되는 불행한 미래를 그린 소설이다. 권력을 잡은 소수층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저한 감시체계인 빅 브라더를 통해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국민의 진실을 억압하는 체제에 익숙한 권력층들에 대한 시민 저항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한때 대한민국에서 활개 치던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연상케 한다.

조지 오웰(1903∼1950)이 작고한지도 벌써 내년이면 70년이 되지만 그가 펴낸 ‘1984년’ 소설은 세계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 이후 세계인들은 마치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며 흔적을 캐는 듯한 권력의 마수(魔手)에 대한 실제적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이 같은 조지 오엘의 소설이 또 한번 유명세를 탔으니 1945년 펴낸 ‘동물농장(Animal Farm)’이다. 이 소설은 구 소련 공산주의를 풍자한 우화이지만 특권층이 휘두르는 권력이 얼마나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두렵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소설의 대강은 이렇다. 인간 농장주의 가혹한 착취에 시달린 돼지들이 반란을 일으켜 농장주를 쫓아내고 직접 농장을 경영하는 혁명을 이뤄냈다. 기치로 ‘평등한 동물 공화국’ 건설을 내걸었고, 많은 돼지 무리들이 가세한 덕분에 인간 농장주를 제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일부 특권 돼지들의 권력 투쟁과 부정부패는 반란 당시의 초심은 아랑곳없이 당초의 혁명을 압도하게 된다. 권력을 잡은 특권층 돼지들은 기세등등했다. 인간 농장주가 살던 집으로 이사해 다른 동물들에겐 술 마시는 것을 금지시켜놓고 소수의 특권 돼지들은 술을 마시고 좋은 침대에서 자며, 자기 자녀들만을 위한 고급 교실을 짓고, 인간과 거래하는 동물에게는 ‘적폐’로 몰아세운다. 불만을 품는 동물들이 있으면 일일이 찍어내 숙청하는 등 공포정치를 강화해나간다. 권력을 잡은 돼지들이 당초 내세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슬로건도 어느덧 변해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내세우며 특권층 돼지들의 천국을 만든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인 것이다.

어찌 돼지들이 인간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겠냐마는 조지 오웰 특유의 기발한 착상으로 만든 작품인바, 소설 속에서나 있음직한 내용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온갖 의혹들이 마치 폭염처럼 한 여름을 달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난 ‘조국’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로 비쳐진다. 사학비리, 딸의 장학금 수령과 부정입학(?) 의혹, 사모펀드 등 숱한 의혹을 한 몸에 지닌, 때가 잔뜩 낀 부류가 그 때를 감추고 깨끗한 사람들을 향해 위선의 목소리를 높여왔으니 한마디로 국민을 졸(卒)로 알고 특권의식에 젖어왔던 게다.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들과 관련된 각종 불법 의혹을 들춰내면서 ‘비리의 종합세트’라 했고, 대학생들이 일어나 ‘조국 아웃’을 외치고 있지만 당사자는 과거의 일이 자랑스럽지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고 했다. 조 후보자에 대해 11건의 고발·고소가 이뤄져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할 입장임에도 장관인 듯 “검찰 개혁은 시민의 열망”이라며 검찰 개혁을 약속하고, 2일 ‘셀프청문회’에서는 숱한 의혹에 “아니오”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유능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장관직을 맡으면 정권에 도움될 것이고 국민들도 안심이 될 테지만 그렇지 못하고 과거 그와 그 가족들의 잘못되거나 위법한 처신으로 얼룩진 흠 있는 자가 정부 고위 공직을 맡는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판인데 야권과 시민단체 등의 고소·고발로 사실상의 피의자나 마찬가지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청와대와 여당의 두둔은 지나침 감이 있다. 야당과 청와대는 지난번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때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살아있는 권력도 비위 등 의혹이 있으면 철저하게 캐내어 사회정의를 곧추 세워라고 당부했다. 그와는 다르게 검찰의 조 후보자와 관련해 압수수색과 강제수사를 두고 “나라를 망치려하는 것”이라며 한 입에 두말을 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옥죄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형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는 조지 오웰의 ‘농물농장’ 소설 속 픽션이 넌픽션이 되려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평등을 내걸고 혁명을 이뤄낸 돼지 지배층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심지어 자녀에 대해 전용 고급 교실을 운영하는 등으로 평민 돼지들의 지탄 속에서도 ‘내로남불’을 외쳐대고 있다. ‘조국 사태’를 보면서 ‘동물농장’ 소설과 연관돼 느껴지는 게 있으니, 생선가게에 도둑고양이를 지키게 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장관 후보자의 행태가 얼마나 같잖으면 준법의 화신, 검사들이 나서서 “누가 누구를 개혁하냐”고 했을까. 코미디 같은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